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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의 금융프리즘) 떠나는 리더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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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26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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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국정감사장. 증인으로 출석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얼굴은 피곤해보였다.

황 전 회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달여 만이다. 지난달 말 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손실 책임으로 KB금융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얼굴을 비친 것이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예상대로 황 전 회장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매서운 질문을 쏟아냈다. 의원들의 질의는 투자실패의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과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황 전 회장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차분히 입장을 밝혔다.

관건은 역시 파생상품 투자를 직접 지시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황 회장의 대답은 "지시는커녕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 대한 투자 자체도 몰랐다"였다.

그는 천재지변과도 같은 재앙으로 예상할 수 없는 많은 손실을 입었지만 투자 당시 파생상품은 선진 금융기법으로 정부가 권유한 사업이었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을 나온 뒤 황 전 회장의 다음 행보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우리금융을 그만 둔 뒤 파생상품 투자로 2억달러를 깡통으로 만들어 준 메릴린치의 국제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감에 따르면 파생상품 투자 시 법률 자문을 해준 법무법인 세종에서도 1억원의 연봉을 받고 고문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의 막강한 실력자로서 퇴임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력 기관에서 일한 것이 흠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곳이 어디였는지는 중요하다.

본인의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이 수장으로 근무했던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큰 손실을 안겨준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황 전 회장은 금융계의 검투사로 불릴 만큼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실패를 모르는 금융권의 실력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은 성공한 금융 CEO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난의 시기일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을 지고 상처난 자존심을 안으로 삭이는 것 역시 힘들 수 있다.

그래서일까. 금융당국의 징계에 대해 법정싸움에 나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황 전 회장은 "아직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전에도 밝혔듯이 소명의 기회를 다시 한번 마련할 수도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다.

잘못된 것은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 군중심리에 휩싸여 바르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는 것도 죄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교통법규를 위반해 놓고 앞사람은 안잡고 왜 나만 잡느냐고 소리쳐 봐야 구차하게 들릴 뿐이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물론 황 전 회장은 굳이 금융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업종, 다른 기관에서 얼마든지 화려하게 컴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복귀 때까지 아름답게 떠난 리더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황 전 회장이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아름답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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