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픔 씻기는 설명절이 되기를…

(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일년중 몇 안되는 날이다. 초유의 금융위기로 2년여에 걸친 기나긴 터널을 거쳐 맞이한 이번 설날은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연휴도 길어 서둘러 귀성길에 나선 시민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풍성한 선물꾸러미를 한아름 안고 보고픈 가족·친지와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오랫만에 고향 친구들과도 술 한 잔을 기울일 설렘에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여전히 명절의 따사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쓸쓸하게 보내야 하는 외로운 이웃이 적지 않다. 고물가와 구제역 사태 등 연초부터 서민들과 농축산인들은 이번 명절에도 허리를 펴지 못할 것 같다. 가족처럼 지내온 가축들이 살처분되는 아픔을 겪고 있을 축산인들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구제역 파동으로 31일 현재 300만 마리의 돼지와 소가 살처분됐다. 지난달 30일에는 몇 안 되는 구제역 청정지역 전라남도에서 의심신고가 들어와 방역당국을 긴장케 했다. 다행히도 음성으로 판명됐지만 바다 건너 제주를 제외한 남한 전역이 사실상 구제역에 오염된 터라 방심은 금물이다. 방역작업에 참가했다 과로사한 일선 공무원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 설 명절이 중요한 분기점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번 명절 귀향을 포기하고 방역작업 공무원들과 함께 보낸다는 소식이다.

그나마 우리가 명절 때만이라도 맘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김 총리를 비롯한 공무원들의 이 같은 희생과 관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구제역 청정지역 회복을 바라온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방역지침에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다.

명절이 되면 소외된 이웃들의 외로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지독한 한파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즘, 자식들과 함께 하지 못한 독거노인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에 다름아니다. 전기장판 한 장에 기대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이들에게도 이번 명절이 모처럼만에 꿀맛같은 휴식으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

부모없이 자라온 소년·소녀 가장들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이번 명절에는 조금이라도 가벼워 졌다는 소식을 듣기 희망한다.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자유를 찾아 나선 탈북자들에게도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당국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물 샐 틈 없는 경계로 우리 국토를 지키고 있는 국군장병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전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설 귀향길은 정쟁을 넘어 국민통합을 이끌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길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우리라도 지켜야지요"라며 미소띤 얼굴로 과천청사를 지키는 한 방호원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명절을 가족과 지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난다는 그의 말 속에 우리 모두의 해답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설을 지나고 나면 우리네 모든 아픔들이 모두 과거지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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