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27일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정원섭(77)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동안 간첩조작 등 시국사건 피고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선고는 계속 있었지만 이번처럼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사법사상 극히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정씨는 경찰 조사단계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이후 검찰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용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정씨의 머리빗, 정씨의 팬티에 혈흔이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 등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없거나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이날 선고 후 “너무 늦었지만 결국 사필귀정의 판결이 나왔다”며 기뻐했다.
그는 “당시 사건을 조작하고 날 고문한 사람들을 명예롭게 용서하기 위해 재심을 청구한 것”이라며 “모진 세월을 감내한 아내가 나보다 더 고생했다”고 말했다.
1972년 9월27일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강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정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춘천 시내 파출소장의 딸로 당시 내무부장관이 ‘전국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하고 그해 10월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할 경우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까지 내렸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15년간 복역한 정씨는 모범수로 가석방된 후 무죄를 호소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기한에 쫓긴 수사기간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음을 밝혀냈다.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정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사법사상 극히 이례적으로 일반 형사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 무죄를 선고했다.
1·2심 재판부는 “당시 경찰조사에서 상당한 정도의 폭행·협박 내지 가혹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며 “수사기관의 증거는 적법절차에 반하는 중대한 하자가 있어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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