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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작가 권기수가 수많은 동구리 설치작품앞에서 폴짝 동구리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사실 동구리라는 이름은 계획하고 붙인게 아닙니다. 즉흥적으로 나온 이름입니다. 동구리를 현자나 신선의 모습, 혹은 동구리의 미소가 부처님의 미소에서 차용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동구리 자체가 그렇게까지 거창한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동구리는 저의 어려운 시절 모습을 반영한 '웃고 있어도 웃는게 아니야'라는 노래처럼 아이러니의 미소죠. 동구리는 저를 대변하는 저, 자신입니다."
지난 7일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만난 '동구리' 권기수 작가는 자신감이 넘쳤다. '스마일 미소'로 화폭에서 날고 뛰고 유유자적하는 '동구리'만큼이나 밝고 쾌할했다.
'동구리'는 지난 4-5년전 미술시장 호황을 이끌던 '팝아트'로 단숨에 인기를 끌었다. 귀여운 캐릭터와 현란한 색감의 톡튀는 화면은 컬렉터들을 사로잡았고 작가의 '동구리'는 브랜드화됐다. 수첩, 컵, 가방, 의류 등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아트상품컬렉션에도 '동구리 세상'을 만들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구글에서 권기수(KWON, Ki-Soo)라는 이름을 치면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함께 그의 작품이 뜨며, 개인화된 Google 홈페이지의 배경화면으로 ’동구리’작품을 사용할 수 있다.
"2008년 뉴욕에서 선보인 구글(Google)작업은 호응이 대단했어요. 그에 비해 국내선 당시만 해도 구글이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인지 반응이 별로였지만 당시 동구리가 뉴욕에서 뜨는 순간이었죠. 붉은 대나무밭을 배경으로 작은 조각배에 동구리가 앉아있는 네폭짜리 작품이었는데 국내에선 팝아트로 분류되어 "내 작품은 팝아트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던 것과 달리 그곳에서는 동양화적이고 한국적인 소재로 받아들이며 관심을 보이는데 놀라웠어요."
국내에서 전시도 벗어났다. 2008년부터 대만 런던 상하이 뉴욕 파리 두바이 자카르타에서 잇따라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만에는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도 생겨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에서는 권기수의 평면 회화뿐 아니라 조각이나 설치작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꽃비가 내리는 듯한 화련한 색감, 흠집하나 없는 동구리, 마치 프린트를 한 것같은 완벽한 색칠, 작품은 컴퓨터로 뽑아낸 듯 깔끔하다.
작가의 손은 가늘고 고왔다. 손톱밑에 물감흔적도 없다. 올해만도 벌써 국내외서 세번째 개인전이다. 혼자서 작품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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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뉴욕에서 선보인 아이구글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선보인 작품. |
그는 이제 한달 평균 10명의 어시스턴트를 둔 'CEO 화가'다. 2년전까지만해도 채색작업을 했지만 작업량의 증대로 아이디어와 컴퓨터작업까지만 한다. 그 다음단계는 어시스턴트가 진행한다. 어시스턴트는 지방대학 등 다양한 대학의 후배들과 함께한다.
"우리나라에 저와 비슷한 나이의 작가의 경우에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제 작업은 이미 시스템화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젊은 작가가 스스로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앤디워홀은 공장을 운영해 실크스크린을 대량 제작했고, 무라카미 다카시는 45명의 조수가 있었죠. 이젠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작업실을 시스템화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요즘은 일반화됐다고 봅니다."
그는 한해에 국내외에서 많은 전시와 공공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수들이 많다고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어서 일년에 100여점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작품값은 한해 평균 5% 정도 인상하고 있다. 현재 100호 크기 경우 2200만원선이다. "작업실엔 늘 재고가 없다"고 했다.
◆'배운게 도둑질'.."동구리는 팝아트 아니다"
화려한 색감, 아크릴작업의 매우 현대적인 작품은 팝아트로 오해받기 쉽지만 그는 늘 팝아트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작품은 동양화적 소재와 개념으로 팝아트를 뛰어넘었다는 것. 전통의 소재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조립한다고도 했다. 그는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순수동양화를 전공했고 졸업후에도 한동한 수묵작업을 했다.
"학부시절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주변인이라는 소외감을 달고 살았어요. 동양화가 강조하는 미덕의 개념이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항을 많이 했죠. 동양화가 주창하는 전통적 정신성을 역행해 당시 동양화계에서 나름 천덕꾸럭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지금도 동양화화 동양정신을 기본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동구리를 통해 죽림칠현이야기나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등을 차용하여 현실에 대한 도피,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지요. 소재도 산수화 사군자(매화 난 국화 대나무)등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배경을 그려 넣습니다."
귀여운 동구리 캐릭터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의 작품은 옛 그림속 인물과 배경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 이 땅과 전세계 동시대를 살아가는 상황과 닮아있고 허상과 실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귀여운 캐릭터지만 애초 동구리는 험상궂었다. 1998년 연 개인전 'The Show'를 통해 나온 동구리는 먹물을 덕지덕지 뒤집어쓰고 흘러내리는 무서운 모습이었다.
"당시 IMF이후 고달픈 삶을 사는 서민의 삶을 냉소적으로 그려낸 작업을 했었죠. 인물 드로잉을 더 빠른 속도로, 간편하게 그리려고 연습하던 과정에서 무의식적인 드로잉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얼굴과 팔 다리,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있는 지금의 동구리와 비슷한 형상이 완성 된 것이죠. 하지만 초기 동구리 역시 수묵으로 빠르게 드로잉하다보니 마치 피 혹은 눈물인양 먹이 흐르고 번져있어 매우 기괴하고 무섭고 슬픈 형상이었습니다. 지금의 귀여운 동구리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지요. 그렇게 계속 먹으로 동구리 드로잉을 하던 중, 월전미술관 앞 식당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위생과 깔끔한 이미지가 생명인 식당이라는 장소 특성상 먹이 번지고 흐른 부분을 깨끗하게 다듬고 잘라내서 설치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동구리가 점차 단순화 되어 지금의 동구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동구리' 이름 탄생은 단순명쾌했다. 2003년 전시장을 찾은 친구들의 “이게 뭐냐”는 물음에 동글동글하게 생겼다고 해서 ‘동구리’로, 옆에 있던 강아지는 ‘멍멍이’로 부른 게 지금에 이르렀다.
이전 초기 작품들이 자족적 행복함, 꽃밭에서 뛰노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치중했다면, 이후 작업은 정치적으로 세상을 등진 이들의 죽림칠현이야기를 반영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예쁘고 귀엽고 즐거운 동구리의 모습으로만 해석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 반성, 반영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리플렉션(Reflection):명경지수'시리즈 첫 선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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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렉션 시리즈 신작. 무지개. |
◆ '까칠 화가' "40대 되니 사회와 조율중"
“모난 생활을 오래 했는데, 마흔이 돼서 문득 ‘그동안 살아온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는 40대가 되니 "사회인으로서 조율이 되고 있다"고 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구입해보니 세상이 달라보인 다고 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다리위에 당당히 서서 아래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지개'작품처럼 자신을 바라볼 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작품은 1층 전시장에 첫번째로 걸려있다.
"무지개는 결여된 어떤 존재를 찾아가는 이상적인 존재물이잖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상이라는 사실로 인해 반사된 무지개의 이미지는 허상의 허상을 상징하고 있어요. 리플렉션 시리즈는 처음에는 화자인 동구리만 비추도록 작업했는데 점차 확장되어 배경과 스토리 전체를 비추는 복잡한 구조인 현재의 리플렉션 작업이 나오게 됐어요. 배경을 점차 밀도있게 빽빽하게 채워나가고 그 빽빽한 와중에 또 반사되는 이미지를 그려 넣음으로써 화면의 여백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지요. "
이 작업은 일반 작업보다 몇배이상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작가는 "다각도로 실험하는 과정에서 반영 제거 여백에 대해 생각해보고 '비움'에 대해서도, 자연적 수양의 의미에 대해서도 깨달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동구리 작가’ 권기수의 작업세계를 볼 수 있는 이전 작업과 신작 등 4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올해 2011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인 <Future Pass-from Asia to the World>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자카르타와 두바이에서도 개인전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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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전시장에 걸린 죽림칠현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전시장에 반사되어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
"올해로 동구리 작업이 10년 됐어요. 사실 저는 작년에도 '리플렉션 시리즈'는 생각도 못했어요. 이번 전시의 관객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까지 동구리가 등장할 것이냐고 하는데 지금 많이 사랑해주시는 동구리를 통해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앞으로 목표요? 돈 걱정없이 작업했으면 좋겠어요. 하하. 어시스턴트 월급도 줘야하고, 또 어시스턴트들이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도 선배로서 마련해주고 싶어요."
한편, 갤러리현대측은 전시 기간 동안 관객이 참여하는 동구리 트리 만들기 이벤트를 실시, 전시 종료 후 20명을 선정하여 작가가 마련한 특별한 선물을 제공할 예정이다. 전시는 30일까지.(02)5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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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사옥 앞에 설치된 동구리. 사진=박현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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