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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경수 기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선수는 약 40명이다. 본토인 미국 다음이고, 골프가 널리 퍼져있는 영국 호주 일본보다 많은 숫자다.
성적은 어떤가. 지난 한 해만 놓고 비교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단 3명이 투어에서 뛰고 있는 대만만 못하다. 대만의 청야니는 지난해 혼자 7승을 기록했다. 한국선수 전체의 승수(2승)보다 많다. 올해도 두 번째 대회에서 벌써 1승을 챙겼다.
한 때 미국 스웨덴과 더불어 여자골프 ‘세계 3강’을 형성하던 한국골프가 양적 성장에 못미치는 성적을 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골프의 잠재력이 고갈되거나 우리 골프문화가 잘 못된 탓은 아닐까.
대부분 한국선수들은 초등학교 때 골프에 입문한다. 그 때부터 골프스윙에만 매달린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골프 하나만 생각해왔다. 연습장에 제일 먼저 가서 가장 늦게 나오는 선수들이 한국골퍼다. 그래서 골프샷 구사 능력은 다른 나라 선수들을 능가한다.
그런데도 박세리를 제외하고 ‘여제’(女帝)라고 부를만큼 출중한 기량을 보인 선수는 없었다. 골프는 곧은 샷, 멋진 스윙만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홀마다 전략을 짜야 하고, 위기에서는 상황판단 능력도 있어야 한다. 사용하려는 클럽이나 구사하려는 샷을 순간순간 정해야 하며, 매일 달라지는 컨디션을 조절하는 법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연습량보다는 ‘머리’에서 좌우된다.
한국선수들은 그것이 부족하다. ‘샷 기술자’일지언정 ‘샷 창조자’는 못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공부는 뒷전인 채 ‘스윙 머신’으로 전락한 까닭이다. 왕년의 여제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 등이 대학에서 중퇴할 때까지 공부와 골프를 병행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골프의 산 증인인 한장상프로(72)는 “우리 주니어선수들이 골프와 공부를 함께 하지 않으면 롱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재미교포프로 앤서니 김도 “한국 골퍼들은 너무 일찍 골프에 몰입한 나머지 18∼19세가 되면 힘이 소진돼버린다. 나는 그 나이 때 친구와 놀고, 늦잠도 자며, 공부도 하면서 인생의 밸런스를 맞춰나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만출신 제레미 린의 사례를 보도했다. 린은 하버드대를 나온 후 뉴욕 닉스에서 주전 가드로 뛰고 있다. 린은 미국에 사는 동양인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신문은 ‘린은 동양인도 운동과 공부를 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운동선수가 학업을 팽개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다른 종목에 비해 늦게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골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학졸업 후 프로가 돼도 늦지 않다는 것을 린이 실증하지 않은가.
한국선수들은 어려서부터 골프에 ‘올 인’한 까닭에 조로(早老)할 수밖에 없다. 샘물을 많이 퍼가면 샘은 일찍 고갈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또 ‘골프는 내 인생의 전부’라는 강박관념에 갇히다 보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변변한 취미도, 인생을 얘기할 친구도 없다. 그만큼 그들의 삶 자체가 각박하고 윤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바탕인데 오랫동안 정상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박세리 신지애 등의 성공신화를 보고 자녀를 골프선수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은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녀의 인생에 골프라는 굴레를 씌울 것인가, 골프와 공부 두 토끼를 좇게 해 다른 길도 열어줄 것인가를. 문화레저부 부국장겸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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