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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의 Y방정식> 정치 포퓰리즘 공식 ‘나누고 베풀고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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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3-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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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상준 기자) 포퓰리즘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이 운동을 주도하는 자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모두 ‘기회주의자’라는 점이다. 포퓰리스트들은 겉으로는 가난하고 힘 없는 서민계층을 위한 ‘지상천국’을 건설할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확보하는 것외에는 관심이 없다.

◆ 이분법, 다수는 아군ㆍ소수는 적

포퓰리스트들이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분법’이다, 즉 국민 계층 간 분열을 조장해 다수의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드리려는 전술이다.

그들은 공통된 문제로 걱정하고 고민하는 대다수 서민의 고통을 해결해 줄 것처럼 호도해 이들을 자신의 편에 서도록 만든 후 ‘우리’라는 표현을 써서 굳건한 동지의식을 심어준다.

그러는 한편 이들과 대치되는 특정계층을 찾아내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서민들이 특정계층에 더 큰 적개심을 갖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자신들이 서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을 억압하는 특정계층과 싸우는 것처럼 연출한다.

유럽의 많은 포퓰리스트들이 이민자, 실업자, 특정인종, 동성애자 등을 포함한 사회 소수계층을 혐오세력, 극단세력으로 몰아붙여 공격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특히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외국 이민자들은 노동자층의 표를 얻고자 하는 포퓰리스트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포퓰리스트들은 이민자들을 악으로 규정하여 그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재물로 활용한다.

정치에 있어 이러한 이분법 전략은 특정집단에 대해 피해의식이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이 아군과 적군을 나누기 위해 실업률을 이용했다면 한국의 포퓰리스트들은 표밭을 일구기 위해 줄곧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른 우리 국민들에게는 반일ㆍ반공 정서가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이같은 정서는 포퓰리스트들에게는 자신들의 선동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훌륭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빨갱이’, ‘친북세력’이라는 단어도 이러한 선동전략에서 나온 정치적 구호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회계층은 다분화되고, 이들의 사회적 요구가 절실해질수록 포퓰리스트들은 더 많은 아군과 적군을 만들어낸다.

요증처럼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서민들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서민’, ‘재계-노동자’ 등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를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해 대치시키는 것도 그들의 고전적인 수법 중 하나이다.

◆ 선심성 정책, ‘우선 베풀고 보자’

자신의 편, 즉 사회ㆍ경제적으로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수층이 정해지면 포퓰리스트들은 눈앞의 이익으로 이들을 현혹해서 환심을 사려한다.

포퓰리스트들은 구조적인 환경개선 등 장기적인 정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단지 국가예산을 활용해 지금 당장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시적인 효과가 큰 정책들 만을 내세운다. 선거철을 맞아 세금을 깎아주겠다거니 모든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겠다고 공약하는 것 등이 좋은 예이다.

이렇다 보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롯되는 한가지 공통점은 대다수 국민들, 특히 서민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 진다는 사실이다.

선심성, 단기성 정책개발에만 집중하다 보니 관료들은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결과적으로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거대한 정책비용이 소요되면서 재정악화까지 가져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 표를 향한 집착, ‘염불보다는 잿밥’

포퓰리스트들은 야당 시절에는 세상을 다 바꿀 것처럼 요란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서민을 순수하고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 국가의 주인으로 치켜세우며 자신들이 앞장서서 지배계층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억울함을 대변해 싸울 것을 약속한다. 체제개혁의 선봉장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면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집권하고 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건한 타협 노선으로 선회하고 만다. 결국에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악’으로 규정했던 경제적 실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보수적인 행정논리를 펴계 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기는 대중도 마찬가지다.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다수 대중은 개혁에 따르는 고통을 견디기 보다는 눈앞의 실리를 차지하기를 원한다. 문제의 해결을 찾기보다는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나 대중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으면 포퓰리즘 특유의 선동정치가 성행하게 된다.

이는 포퓰리스트 운동을 좌우하는 것은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논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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