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이 고집한 긴축정책에 분노한 유로존 국민들은 프랑스 대선을 포함한 그리스 총선·독일 지방선거를 통해 긴축을 밀어붙인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궈놓은 정책을 뒤엎고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꺼낸 카드 '성장'은 그만큼 위기 탈출을 뒤로 미룬다는 우려도 함께 안고 있다.
독일의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확정되자 유럽 경제를 위해 성장협약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겠다고 밝혔다.
베스터벨레 장관의 발언은 그동안 재정협약을 중심으로 긴축 위주의 정책만 고집하지 않고 올랑드 당선자의 공약을 받아들여 성장정책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올랑드가 취임하면 먼저 독일을 방문해 성장협약을 논의, 내달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보다 더 탄력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유럽개발은행(EIB) 등을 통해 인프라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해 개발 채권도 발행하는 방법이 동원될 전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긴축론을 강조했던 유로존의 성장 전환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징적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코펜하겐 삭소 은행의의 스티븐 제콥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제는 정치권이 유럽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정치권과 유권자 간 공백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콥슨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와 그리스 선거 결과는 이를 반영한다”며 “우리가 개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리 소재인 CMC마켓의 파브리스 쿠스테 대표는 “올랑드는 대선 캠페인에서 걸었던 공약으로 운신의 폭이 실질적으로 좁아질 것”이라며 “그리스 연정이 선거 패배 후 구제금융 합의 내용을 재협상하겠다고 말을 바꿔 유로존이 다시 전면적인 위기 모드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유럽 지도자들이 제시한 성장전략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제콥슨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에서 최근 성장협약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하지만 실체에 대해선 아무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드라기 총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 활동을 고취시킬 수 있는 구조개혁을 주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점에 대해 공감하고 기존 긴축정책의 연장선에서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올랑드는 재정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더 걷겠다는 입장이다. 올랑드는 그동안 논란이었던 유로채권을 도입하고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로 줄이기로 한 신재정협약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유로존이 성장 프로젝트를 가동해도 위기 상황을 진정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리스의 유로 이탈이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유럽개혁센터 관계자는 “그리스는 처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국가”라며 “그리스의 유로 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리스의 총선 결과로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6일 트위터를 통해 “그리스가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정치적인 혼란까지 가중되며 경기 불황을 겪을 것”이라며 “그리스는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나머지 유로존 국가에 대한 위기를 확산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그리스 이탈시 시장은 즉각 그 다음은 누구냐는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발레리 플라뇰 리서치 책임자는 “시장이 현재 프랑스보다 그리스를 더 걱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런던의 로이드 TSB의 아킬레아스 게오르고폴로스 애널리스트는 “주식보다는 채권이 더 민감하다”며 “국채 쪽이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6% 수준을 넘어선 10년 만기 스페인 국채 수익률이 마지노선인 7%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랑드가 대통령 유력 후보로 떠올랐을 때 금융시장은 이미 채권 수익률을 반영했으나 당선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긴축 발언이 본격적인 올랑드 프리미엄으로 추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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