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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칼럼> 알아야 보이고, 알면 더욱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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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7-0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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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민영<아트북스 출판사 대표>

정민영 <아트북스 출판사 대표>

미술의 고향은 일상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미술은 일상 공간을 풍요롭게 장식했다. 집안에는 족자, 병풍, 이불과 보자기의 자수, 심지어 부채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서구 미술의 유입으로 미술의 고향도 변한다. ‘생활 속의 미술’이 ‘생활 밖의 미술’로 이동했다. 집안에서 미술이 사라지고, 감상을 위한 전시공간이 늘어났다. 소재도 바뀐다. 물감에서 테크놀로지, 비디오 같은 첨단매체로. 미술이 난해해졌다. ‘미술을 위한 미술’이 가속화될수록, 미술은 ‘그들만의 천국’이 되었다.

미술의 대중화 작업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미술과 일상의 소원한 관계 허물기가 마치 전문가가 미술에 몽매한 사람들에게 시혜하듯이 진행된 탓이다.

‘미술 따로, 일상 따로’의 분단 상황은 공고해졌다. 멀어진 관람객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미술책도 미술 전공자를 위한 교재 위주로 출간되었다.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거나 미술이 어떻게 생활과 연결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데는 인색했다.

이런 흐름에도 변화가 생긴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 탓이다. 해외여행의 자유화, 주5일제 근무, 인터넷의 확산, 서양 명화들의 초대형 국내 전시회, 국내외 미술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미술을 접하기가 쉬워졌다. 근엄하던 미술도 표정이 사근사근해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기획전과 대중 친화적인 그림이 관람객과 눈높이를 맞춰갔다. 미술책도 포즈가 바뀌었다. 미술인 중심에서 일반 독자 중심으로 ‘하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술 여행서의 확산이다. 해외여행을 통해 유럽과 미국의 유명 미술관에서 명화를 직접 볼 수 있게 되면서, 미술에 ‘여행’이라는 실용성을 더한 미술책이 자연스럽게 해외여행의 동반자로 떠올랐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과 미국, 러시아 등의 미술관 기행 관련서 코너에 사람들이 몰렸다.

또 주관적인 미술 감상서의 일반화다. 오랫동안 미술품 감상은 미술사가나 미술이론가 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사람들은 작품에서 진한 감동을 받아도, 그것이 객관적인 지식과 어긋날까봐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시콜콜한 개인사로 숙성시킨 미술이야기는 감상의 문턱을 낮춘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미술사나 미술양식, 조형미, 기법 등 객관적인 정보에 어둡다고 주눅들 필요 없이, 마음대로 감상하면 된다는 ‘복음’을 안겨주었다.

예전의 미술책이 작가와 미술사 같은 지식 전달매체로서 독자의‘외부’에 머물렀다면, 지금 미술을 이용한 책들은 독자의 ‘내부’를 겨냥한다. 객관적인 미술정보 전달에 충실한 전자는 독자의 삶과 무관한 것이기에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독자와 직접 관련된 후자는 다르다. 삶과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이런 변화는 2000년대 들어서 뚜렷해졌다. 실속보다 구호에 머문 미술의 대중화가 책을 통해 구체적인 미술의 대중화로 나타난 것이다. 미술로 배우는 경영의 지혜, 미술로 계발하는 창의력, 미술 속의 연애 비법, 미술과 심리치유, 미술과 자기계발 등 독자의 품으로 파고드는 말랑한 기획물들은 ‘미술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 미술이 결코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뭉클하게 일깨워준다.

미술책은 미술의 진경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이다. 미술책 즐기기는 미술 즐기기로 통한다. 알아야 보이고, 알면 더욱 사랑하게 된다. 책 속에 미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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