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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웨이하이> 3-2. 아시아 1위 북양해군, 바다 위에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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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9-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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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청일전쟁 당시에 쓰였던 딩위안함을 복원하여 만든 배. 딩위안함은 당시 길이 94.5m, 넓이 18m, 적재배수량은 7670t으로 아시아 1위, 세계 6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철갑선이였다.

아주경제 김효인 기자= 웨이하이시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청일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딩위안(定遠) 함선이 바닷가 위에서 당당한 위용을 드러냈다. ‘딩위안젠(定遠艦)풍경구’라 불리는 이 곳은 지난 7월 중국에서 개봉한 ‘1894·갑오대해전’의 영화촬영지이기도 하다.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딩위안함은 청일전쟁 당시 쓰였던 함선을 복원하여 지하2층, 지상3층, 5층 규모의 대형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청일전쟁 당시 중국 딩위안함은 길이 94.5m, 넓이 18m, 적재배수량은 7670t으로 당시 아시아 1위, 세계 6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철갑선이였다. 함선 위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용으로 수놓여진 황금색 깃발이 당시의 영광을 상징하는 듯 펄럭이고 있었다.

현지 안내원과 함께 함선 갑판에 오르니 대포와 무기들이 당시 사용됐던 것들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제작돼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안내원에 따르면 이곳의 대포는 포탄 한발을 발사하기 위해 12명의 인원이 필요했다. 당시 총 12문의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니 무기 발사에 필요한 인원은 족히 100명은 넘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 많은 무기들을 실은 배가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 조차 신기하게 느껴졌다.

안내원은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진기술을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시키자는 양무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이곳에 정박해 있는 딩위안함의 건설 또한 북양해군의 총독 리홍장(李鴻章), 그의 스승 증국번(曾國藩) 이 양무운동의 일환으로 영국의 기술자들을 데려와 건조하게 된 배입니다. 하지만 초기와 달리 양무운동은 서태후가 전쟁에 쓰일 자금을 빼돌려 이화원을 건설하는데 탕진하는 등 관료들의 부패가 심해지면서 청나라의 국력은 점차 쇠퇴하고 결국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함선 곳곳에는 당시 선원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선실과 청일 양국의 해군복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일반선원들은 특별한 침대없이 양쪽 끝에 줄을 매달고 매달려 잤던 반면, 총독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배 안에 개인 침실이 제공되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전함으로 부터 포탄을 맞은 흔적도 전쟁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딩위안 함선의 어두운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니 밝은 했살과 함께 청정한 바다가 가슴을 확 트이게 했다. 바다 위에 서 있는 딩위안함은 우리에게 “지금은 평화로운 바다였지만 불과 100여년전만해도 이곳은 포탄이 오가는 전쟁지였다는 것, 그리고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일본과 서양열강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충고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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