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길목마다 화사한 단풍과 억새가 반기는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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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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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G:CENTER:CMS:HNSX.20121024.004152278.02.JPG:]<br/>아주경제 최병일 기자= 세월이 화살처럼 달려갑니다. 단풍이 절정인가 싶더니 어느새 첫 서리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주의 가을은 낭만적인 시간을 남겨두었습니다. 한라산 구릉마다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화사하게 웃

한라산 산행길에 만나는 단풍은 비록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수수하면서도 아름답다

시인 백석은“단풍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즐댄다”고 했다. 어찌보면 단풍은 가을과 한 묶음인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단풍을 제대로 느끼려면 한라산의 영실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한라산 남서쪽에 위치한 영실코스는 등산로의 총길이가 5.8km로 제법 만만치 않지만 다양한 풍경들이 있어 등산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영실코스는 비단 가을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봄이면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화사하게 피고, 여름이면 신록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에는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인다. 탐방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미송(美松)들이다. 곧게 쭉쭉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작은 조릿대들이 군락지어 펼쳐져 있다.

멀리 백록담이 보이고 사람들은 산으로 간다. 한라산은 점점 가을의 중심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 불어온 강풍으로 인해 생각보다 단풍의 수는 적지만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단풍만으로도 가을의 서정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하다. 아무리 코스가 순해도 산은 산인지라 영실기암이 보이는 둔턱까지 올라서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등산화를 죄어야 한다. 가파른 경사와 계단을 따라가면 융기한 백록담과 구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떤 이는 이 길을 산행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트레킹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부르든 한라산으로 오르기 위한 가장 행복한 코스임에는 분명하다.

마치 오백나한상의 모습이 부조된 것같은 영실의 기암들

약 1시간 정도를 오르면 해발 1500m표지석이 보인다. 해발 1500m라고 하지만 영실 탐방로 입구가 1280m이니 기실 300m도 못 오른 셈이다. 영실 휴게소가 있는 이 지점에는 영실코스의 백미인 영실기암(靈室奇岩)을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다.

영주십경 중에 제1경으로 꼽히는 영실기암은 신선이 살았을 것 같은 신선한 기운을 뿜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백장군 혹은 오백나한상이 으뜸인데 여기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한라산 서쪽 능선에 아들 오백명을 둔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고기를 잡으러간 아들들을 먹이려고 엄청나게 큰 가마솥에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그 죽을 젓다가 신고 있던 나막신이 미끄러지면서 그만 가마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런 사정을 모른채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들이 허겁지겁 죽을 퍼먹다가 솥밑에 어머니의 나막신을 발견하고는 어머니를 삶아 먹었다는 죄책감에 모두 자결하여 돌이되었다고 한다. 그 돌들이 바로 영실기암의 오백나한상이 되었고, 그때 아들들이 죄책감에 못이겨 피눈물을 흘린 것이 대지에 스며들어 철쭉을 붉게 물들인다고 한다.

원래 영실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의 이름이 오백나한상인 것은 부처님을 호위하던 오백나한의 모습을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나한상의 중암에 다른 기암과 확연히 구별되는 미륵존불암이 위치하고 왼쪽에는 병풍바위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있다. 영실기암과 오백나한암상은 지난해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84호로 지정돼 있다.

예전에는 영실까지 가는 길이 맨바닥이어서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도 하고 때로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병풍바위 위쪽 능선이 급해지는 지점부터는 나무데크를 설치해 보다 편리하게 산행을 즐기게 했다. 급한 구릉을 넘어서면 갑자기 시야와 확트인다. 병풍바위 위로 구상나무숲이 물결을 이루고 크고 작은 오름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조릿대 군락지와 화산석들이 평원을 가득 채운 곳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선작지왓이다. 선작지왓은 제주말로 ‘서있는 돌밭’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선작지왓은 사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봄이면 붉은 철쭉의 낙원이고 여름이되면 푸른 색 신록으로 변한다. 가을이면 단풍색으로 대지를 물들이다 겨울이되면 설경을 만든다. 그 때문에 선작지왓을 ‘산상의 정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작지왓을 지나 평평하게 난 산길을 올라가면 윗세오름의 첫 번째 오름인 윗세족은오름이 보인다. 붉은 오름 누운 오름 족은 오름 세 오름을 일컫어 부르는 이 삼형제 오름에는 백롬담 분화구 서벽과 한라산 서쪽 사면의 모습까지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끊긴다. 윗세오름을 따라 오를 수 있지만 백록담까지의 등정은 통제하고 있어 안타까운 발걸음을 돌려야한다.

태양빛을 받고 억새는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제주의 가을은 풍성한 색의 향연이다.
세상은 온통 황금빛이다. 일렁이는 태양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어깨에는 햇살이 모래처럼 부서진다.

한라산 등정이 조금 아쉬움을 준다면 어스름이 되기 전에 새별오름을 오를일이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의 새별오름은 매년 정월 대보름 들불출제가 열리는 곳이다. 이맘때쯤 새별오름의 억새는 희고 눈부시다. 어른 키보다 큰 억새들이 지는 해의 붉은 기운을 받아 황금빛으로 타오른다. 새별오름은 둘레 2713m, 면적 52만2216㎡의 새별오름을 예로부터 새벨오름 또는 새빌오름이라고도 했다는데,‘새벨’ ‘새빌’이 ‘샛별’의 제주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름에 해가 걸리면 세상은 온통 황금색으로 변한다. 지나는 사람들의 어깨에는 태양빛이 스르르 바스러지며 붉은 자취를 남겨놓는다. 사람들은 오름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고 어둠속의 남겨진 말은 미인의 눈썹 같은 달을 쳐다보며 사색에 잠겨있다. 제주의 푸른 밤은 오름 너머로 잠겨버렸다.
어느새 달이 떴다. 말은 길게 목을 빼고 하늘을 본다. 가을 제주의 밤은 시나브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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