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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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1-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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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패의 연속이던 인간 이순우 '실패가 성공의 원동력'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2만여명의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열정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지난해 5월 중순, 이순우 당시 우리은행장(사진)은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내정되자 이 같이 말했다. 이 회장은 37년의 은행원 생활 끝에 그룹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1950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77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행하면서 은행에 발을 들였다.

은행 입행 전까지 이 회장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명문 중학교와 명문고 입시 실패, 목표한 대학입시에도 실패했다. 후기인 성균관대를 갔지만 사법고시에도 낙방했다.

쓰디쓴 실패의 끝에 들어온 은행 생활이 즐거울 리 만무했다. 하지만 한 선배로부터 '그럴거면 관두라'며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난 후로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웃는 연습까지 해 가며 마음을 연 덕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선배를 인생의 멘토로 꼽는다.

직원들과도 격의없이 지내는 소탈한 성격 덕분에 그는 '서번트 리더십'의 대표적 사례로도 언급된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의미로 부하 직원들 섬겨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리더들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다.

고객에 대한 90도 인사와 환한 미소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정통 은행맨으로 생활하면서 갖게 된 그의 습관이다. 이 회장은 "많이 웃는 사람이 은행 고객들을 더 많이 가슴에 품을 수 있다"면서 "평소에 많이 웃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에 있어서는 깐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2년 첫 임원직인 기업금융단장을 맡았던 당시 LG카드 사태가 터졌다. 주채권은행의 담당임원으로서 그는 정부 당국과 LG그룹 및 여러 채권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때로는 읍소로 때로는 강단있는 밀어붙이기로 LG카드의 정상화를 이뤄냈다.

2004년 개인고객본부장(부행장)을 맡았을 때는 상품 및 서비스 안내장, 포스터 등을 직접 일일이 챙겨본 후 합격 판정을 내려야만 영업점에 배포할 수 있도록 해, 담당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4년간 꼴찌에 머무르던 우리은행의 여자 프로농구단인 '우리한새농구단'은 지난 2012~2013 여자프로농구 대회에서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아시아 챔피언십 대회까지 우승을 거머쥐며 화제를 낳았다. 현재도 성적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학창시절 번번히 고배를 마시던 이 회장도 말단에서부터 은행장, 지주사 회장까지 올랐다. 우리금융 역사상 최초 사례다. 무수한 실패는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결국 상업은행 입행은 결국 그의 '신의 한 수'가 됐다.

인터뷰 말미, 금융권 입사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자 이 회장은 "씨를 뿌리고 5년 동안 작은 순만 나오고 자라지 않은 모죽(毛竹)은, 누구보다 크게 자랄 준비를 하다 어느날 갑자기 30미터까지 자란다"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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