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경렬 기자 = "기존에는 낙후된 주택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이 뉴타운 개념이었지만 이제 한국 사회는 (도시재생의 개념을 도입할 만큼) 굉장히 성숙했다. 미래를 얘기하는 데 있어 과거를 이해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오래된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최막중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
1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1층에서 개최된 '창조적 도시재생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민·관·학계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은 해외 선진 사례를 공유하고 도시재생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통해 "전면 철거나 대규모 개발의 물리적인 환경 개선을 뛰어넘어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을 보존·활용하고 경제, 사회, 문화, 안전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도시재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막중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은 축사에서 "(도시재생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균형을 찾고,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조강연은 전 일본건축학회 회장인 사토 시게루 와세다 대학교 교수가 '마치즈쿠리를 통해 본 도시주거재생의 트렌드와 도시활성화를 위한 방향들'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마치즈쿠리는 민관 협치 마을 만들기 정책으로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협의회가 전문가의 협력과 행정 지원을 받아 주체적으로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커뮤니티 복원 활동이다.
사토 교수는 "마치즈쿠리는 1970년대부터 3세대에 걸쳐 발전해 왔다"며 "지역의 모델이 개별 민간사업의 동기 부여가 돼 지역 전체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자율적인 순환이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조강연에 이어 △한국의 도시정책 및 거버넌스 추진방향(구자훈 한양대 교수) △도시주거재생의 역사적 관점과 추진 전략(프란시스코 샤닌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 △서울의 도시재생 비전과 정책방향(진희선 서울시 주거재생정책관) 등 세가지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구자훈 교수는 "20세기 까지는 도시의 패러다임이 기계적, 분야별 메커니즘에 의해 기능적 수요기반의 물리적 환경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앞으로는 우리가 가진 자산과 가치를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도시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시스코 샤닌 교수는 "인간문명에 있어 도시는 장기적 인간의 생존을 담보해주는 유일한 보장 수단"이라며 "도시와 분리된 주거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와 주거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샤닌 교수는 도시와 주거에 대한 대안 모델로 멕시코 몬트레이와 콜롬비아 메들린을 소개했다. 멕시코 몬트레이는 대학캠퍼스와 주변지역 재생을 위해 주거재생에 초점을 두고 사회통합과 도시재생을 유도했다. 콜롬비아 메들린은 새로운 복합 건축을 통해 공동체 회복을 추구했고, 도시공간의 질적 향상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희선 주거재생정책관은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기존의 정비방식이 작동되지 않기 시작했다"며 "물리적 환경정비와 더불어 경제·사회 분야가 융·복합된 통합재생이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승효상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장을 좌장으로 김호철 단국대 교수, 김미현 사회투자지원재단 지역재생센터장, 박세훈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신중진 성균관대 교수, 이종원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공합지원센터장이 도시재생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나눴다.
김미현 센터장은 "도시재생에서 중요한 도시풍경이라는 것은 미관이나 아름다운 볼거리를 넘어 도시가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자립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내는 것을 총체적으로 지칭한다"며 "커뮤니티를 어떻게 복원시킬까의 문제와 함께 지역재생이 계속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커뮤니티 복원과 관련해 비영리단체(NPO) 육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호철 교수는 "도시재생이란 단어를 많이 쓰지만 실질적으로 도시재생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비영리단체들이 훨씬 많아지기 전까지 지원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세훈 연구위원은 "정부의 정책이라는 게 공공재원이 투입되기 때문에 투입에 따른 평가가 있고 성과를 요구하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도시재생정책에서 양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요구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편화된 도시재생 정책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맞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달 말 출범하는 창신·숭인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맡게 된 신중진 교수는 "똑같은 근린재생이라도 1000만 도시 서울과 10만 도시 태백·목포는 다르다"며 "같은 정책과 제도로 도시재생을 진행하다 보면 지금까지 관습상 행정이 하던 방식이 되는 순간 도시재생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꼬집었다.
도시재생위원회 등 관련 기구가 계획 수립뿐만 아니라, 예산편성까지 관여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종원 창조도시본부장은 "한정된 자원때문에 사업에 계획된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거의 없다"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계획을 세워도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실행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창복 마을공동체공합지원센터장은 "마스터플랜 수립 후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이 이제는 효용이 없다"며 "경과적 실천과 누적적 플래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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