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도 이만큼 훌륭하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작품 뿐 아니라 스태프, 배우들 모두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뮤지컬 ‘마타하리’가 3월29일 개막 이후 8주만에 관객 10만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뮤지컬 관객 수 10만명은 영화로 따지면 1000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이번 기록은 국내 창작뮤지컬 사상 최단 기간에 이뤄낸 성과다. '사상 최단 기간 10만명 동원 쾌거'. 그 뒤에는 ‘마타하리’의 제작사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대표 엄홍현이 있었다.
뮤지컬 ‘마타하리’ 외에도 ‘몬테크리스토’ ‘모차르트’ ‘햄릿’ ‘레베카’ ‘삼총사’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작품들 역시 모두 엄홍현 대표의 작품이다.
지난 2004년 뮤지컬 제작에 대한 투자로 시작한 엄홍현 대표는 2006년 ‘드라큘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뮤지컬 제작에 발을 들였다. 2006년에는 독일 월드컵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흥행 실패의 쓴 잔을 맛보기도 했다.
엄홍현 대표는 “공연 프로듀서를 하다 보니 공연은 여러 가지가 갖춰져야 흥행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장 뿐 아니라 작품의 방향성과 캐스팅, 직원들의 팀워크, 투자 등 많은 요소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원래 공연을 좋아했던 엄 대표였지만, 기획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선배들의 권유로 기획을 시작했는데, 6~7년 동안은 공연의 흥행에서 어떤 부분이 관건인지조차 몰랐다고 엄 대표는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엄 대표는 “공연 대관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배우들이 우리 회사를 잘 몰랐다. 저 또한 배우들과 친하지 않았다”면서 “3~4년 동안 배우들과 어울리면서 작품을 보는 눈도 좋아지고 운도 많이 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엄 대표는 공연 스태프와 배우, 제작사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강조했다.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작품에 애정을 가져야 100% 시너지가 발휘된다는 것.
엄 대표는 “공연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다. 100명이 넘는 스태프나 혹은 배우 중 누구 하나라도 작품에 의욕이 없다면 공연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면서 “제작사 대표와 프로듀서로서 공연을 만드는 데 구성원들이 작품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디자이너와 연출가 등 구성원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자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EMK의 뮤지컬은 유럽풍에 신세대적 감각
EMK가 제작한 뮤지컬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알 수 있다. 바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는 것. 의상부터 무대 배경, 소품, 장식까지 과거 유럽풍을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공연이 채워진다.
엄 대표는 “작품 제작의 기준을 딱히 정하진 않았지만, 유럽풍의 공연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무대나 의상 코드부터 세트까지 웅장하고 유럽 스타일의 색감과 무대를 사용한다”며 “특히 의상은 과거 유럽에서 입었던 코르셋 치마나 독특한 모자 등을 사용한다. 무대가 커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공연의 음악 역시 유럽 스타일을 따라간다. 빠른 비트나 전자 음악이 들어간 것이 아닌 클래식 공연을 방불케 하는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유럽의 느낌에 조화를 맞춘다.
엄 대표는 “풍성한 음악을 선호하는데 클래식 음악이나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는 음악을 주로 선택한다. 뮤지컬이란 기본적으로 뮤직이 먼저다”라며 “음악적으로 빠른 리듬이나 락 같은 것보다 클래식이나 앙상블 쪽으로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뮤지컬계에서는 EMK와 함께 연극 극단에서 시작한 신시컴퍼니가 제작사 중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시컴퍼니 역시 뮤지컬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고스트’ ‘원스’ 등 여러 흥행작을 탄생시키며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엄 대표는 “신시컴퍼니도 존경받아야 할 회사라고 생각한다. 연극에 음악을 추가한 것이 뮤지컬인데 그 부분을 잘 그리는 것 같다”면서 “신시컴퍼니가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켜나가고 있다면, 우리는 신세대적이다. 새로운 것을 다른 회사보다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태프들도 새로운 사람을 많이 받고, 배우들도 우리 회사와 처음 일하는 이들이 많다. 틀에 박혀 있기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물론,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직원 모두가 다들 젊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만의 색깔을 찾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타하리’에 가장 큰 자부심…모진 혹평은 아쉬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지만, 엄홍현 대표에게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존재한다. 그 중 ‘마타하리’는 엄 대표가 술과 담배를 끊었을 정도로 애 쓴 작품이다.
엄 대표는 “‘마타하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올린 작품이다. 다른 라이센스 작품은 바꾸는 것이 복잡했지만, ‘마타하리’는 내 방식대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며 “술·담배를 끊을 정도로 많은 공을 들였다. 앵콜 공연 때 다시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할 때마다 성에 안 차는 작품은 ‘모차르트’다. 이미 네 번 공연을 했는데 매번 바꿨고, 이번에 또 바꾼다”면서 “무대와 음악까지 모든걸 바꾸고 있다. 음악가의 인생을 표현하는게 어렵지만, 이번에는 완성 버전을 만들어서 10주년을 맞이하고 싶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마타하리’의 관객 수 10만명 돌파는 창작 뮤지컬로는 ‘엘리자벳’ 초연 이후 두 번째 대기록이다. ‘마타하리’가 이만큼의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작품의 스토리, 드라마틱한 요소 등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태프와 배우들의 열정이 뒷받침됐다는게 엄 대표의 생각이다.
엄 대표는 “이번 공연은 남북 분단의 소재, 볼거리,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풍부하게 하려고 했다”며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 스태프들과 배우도 마찬가지다. 극장, 대본, 배우, 작품 모든 게 다 갖춰져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마타하리’는 EMK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만들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일부에서는 혹평을 쏟아내고 있기도 하다.
엄 대표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을 보기 위해 외국에서도 관객이 직접 와서 본다. 짧은 뮤지컬 역사 속에서도 이런 일은 최초인데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면 아직 우리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엄 대표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뮤지컬을 제작하면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우리 스태프나 배우를 외국에 알리고 싶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이 외국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공연되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