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데뷔 후 9년, 한계에 부딪힐 법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계는 없었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만큼의 여유와 내공이 느껴졌다. 걸그룹 원더걸스 이야기다.
원더걸스가 새 앨범으로 컴백했다. 지난해 8월 3년여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 ‘REBOOT(리부트)’ 이후 약 11개월만이다. 당시 파격적인 ‘밴드’ 콘셉트로 돌아와 모두를 놀라게 했던 원더걸스는 이번에도 밴드 콘셉트를 바탕으로 했다.
“밴드로 아예 전향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하던 음악 중에 밴드 장르가 더 생긴 것 뿐입니다. 활동 계획도 첫 주에는 밴드 라이브로 싱글 앨범 세 곡을 연주할 예정이고요 둘째주 부터는 ‘Why So Lonely’를 댄스 버전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선미)
멤버 모두가 이번 앨범에 참여했지만 수록된 곡은 딱 세 곡. 그 중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Why So Lonely’는 JYP만의 타이틀곡 선정 시스템(?)으로 결정됐다. 그렇기 때문에 타이틀곡 선정에 대한 이견이나 의견 충돌도 없었다는 게 멤버들의 전언이다. ‘Why So Lonely’는 선미와 혜림이 직접 작곡을, 선미, 혜린, 유빈이 작사에 참여한 곡으로 레게팝 장르 곡이다. 지금껏 원더걸스가 보여주지 않았던 ‘레게 팝’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위험을 감수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멤버들은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에 ‘우려’보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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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멤버 넷이 모두 음악 작업을 하면서 여러 장르들이 나왔어요. 원더걸스가 해왔던 디스코 음악의 장르들도 있었고, 여러 장르들이 있었지만 레게 팝이 선정된 것 뿐이죠.(웃음) 모험 아닌 모험인데 반응이 어떨지 너무 궁금합니다.”(선미)
특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JYP 박진영 프로듀서의 곡이 아닌 자신들만의 곡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박진영 PD님께서) 자전거를 끌어주시다가 손을 놓은 느낌이 들었어요. PD님께 음악을 만들 때나 프로듀싱 방법들을 PD님 방식대로 배워왔는데, 그 방식에 저희만이 가진 색깔을 입힌 것 같아요. 말은 ‘탈박’이라고 하지만 사실 PD님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아이디어도 많이 내셨고, 회의에서도 ‘이런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좋을 것 같다’는 등의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물론 예전엔 1부터 10까지 PD님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면, 지금은 7이 저희의 의견이고 3 정도가 PD님이 도와주신 것들이죠. 저희가 이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앨범인 것 같아요.”(예은)
총 세 곡 이 수록된 원더걸스의 이번 앨범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싱글 앨범의 형태로 발표됐다. 약 11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낸 앨범이 싱글이라니. 다소 아쉬울 법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원더걸스 멤버들의 온갖 노력과 고뇌, 그리고 변화와 도전이 깔려 있었다.
“‘I Feel You’ 활동을 끝내고 바로 곡 작업에 들어갔어요. 그때 박진영 PD님께서 ‘이제 원더걸스 노래는 안 쓰겠다’고 말씀하셨죠.(웃음) 그래서 다양한 음악작업을 했습니다. 어떤 방향이 맞을지에 대한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아 이럴 바에 ‘댄스를 하자’라는 투정을 하기도 했었습니다.(웃음) 그런데 그 마음도 잠깐 지나갔어요. 지난 앨범을 위해 합주하는 데 들였던 노력도 있고, 저희가 연주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대로 된 밴드의 모습을 보여드리자는 건 다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예은)
지난해 처음으로 밴드 음악을 선보였을 때 주변에서는 ‘라이브 연주를 할 줄 아느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우려들은 원더걸스에게 또 다른 노력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싱글 앨범 모두 최대한 리얼 밴드 사운드에 가깝게 녹음을 해보자는 의지가 반영됐고, 이 때문에 조금은 아쉬운 세 곡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앨범의 퀄리티를 생각하자는, 이제는 제법 ‘뮤지션’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들이다.
2007년 데뷔 후 약 10년의 시간동안 원더걸스는 ‘박진영’이라는 큰 나무의 그늘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제 아무리 품을 벗어나 원더걸스라는 이름으로 오롯히 앨범 작업을 한다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박진영 그늘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박진영PD님의 방식이 힘들때가 없었는지 짓궂은 질문도 했다.
“PD님께서 어떤 조언을 하실 때 약간 과장해서 말씀하시는 게 있어요. 그래야 이해한다고 생각하시거든요.(웃음) 어떤 걸 주문하실 때 150%로 부풀리세요.”(예은)
“예를 들면 PD님께서 선호하시는 방식 중에 ‘찍고 날리기’가 있어요. 2PM 분들 노래 중에 ‘하트 비트’가 있는데 그게 바로 PD님의 ‘찍고 날리기’가 잘 반영된 노래죠.(웃음) 지금 PD님 밑의 어린 친구들은 아마 그 방식을 배우고 있을거예요. 하하하. 저희처럼 연차가 된 아티스트는 이제 그 %가 좀 줄어들었죠.(웃음)”(선미)
박진영PD의 그늘을 벗어난 것,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좋은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 때문에 가요계에서 원더걸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매우 긍정적이다.
게다가 최근 ‘마의 7년’이라 불리는 아이돌 그룹들이 해체와 멤버 탈퇴 등의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원더걸스의 활동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최근의 아이돌 그룹의 행보를 바라보는 멤버들은 어떤 마음일까.
“아무래도 많은 아이돌 그룹이 오랜 기간 변화 없이 활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 역시 선예와 소희가 팀을 떠났고, 선미가 다시 돌아오면서 지난해 컴백할 수 있었지만 그룹이라는 게 많은 친구들이 함께 같은 목표를 놓고 가다보니 본인이 원하는 것들이 갈라질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정말 어려운 일이예요. 최근에 해체 선언하신 분들도 많을텐데 그 과정에서는 분명 많은 고민을 했을거라 생각해요. 많은 대화도 했을거고요.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내려놓는 다는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 결정을 지지하고 존중해요. 저희도 선예와 소희가 팀을 떠날 때는 두 사람 없이 그룹을 한다는 게 대중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몰라서 팀을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분명 두 멤버들의 빈자리가 느껴질테니까요. 하지만 그 부분을 다행히 선미가 잘 채워줬고, 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면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요.”(예은)
그룹 활동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멤버들 개인 활동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던 원더걸스. 지난해 9월 방송된 ‘언프리티 랩스타2’에 멤버 유빈이 출연한 것과 혜림이 중국 영화 촬영을 진행한 것 외에는 예능 등의 다른 방송에서 멤버들의 개인 활동은 뜸했다.
멤버들은 “예능은 잘 못해서 고정이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라고 웃으면서도 “다들 합주를 해야하기 때문에 멤버 각자가 꼭 소화해야하는 스케줄이 아니면 자제했던 것도 있을 거예요”라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개인 활동에 대한 욕심보다는 여전히 ‘원더걸스’가 이들에게는 가장 먼저인 셈. 하지만 개인 활동으로도 좋은 성적을 거둬들였던 선미는 올해 안에 솔로 앨범을 발매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아직 확답을 못 드리겠다”며 웃으면서도, 가능성을 열어둬 기대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데뷔 10년차 원더걸스에게 음원 1위라는 건 어찌보면 이제 무의미해졌을지도 모른다. 이젠 그 이상을 위해 나아간다.
“당연히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죠.(웃음)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JYP의 좋은 흐름과 기운을 잘 받아서 좋은 성적이 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저희가 준비했던 것 보여드릴 수 있는 음반이라는 걸 알아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유빈)
“1등 안 해도, 차트에서 롱런 하고 싶습니다! 그게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웃음)”(선미)
화려한 인기를 등에 업다보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당연할지도 모르는 아이돌 세계에서 원더걸스의 행보는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저 그런 아이돌이 아닌, 변화와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는 원더걸스에게 이번 앨범은 그들이 앞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가장 닮아있는 앨범이다. 원더걸스는 그렇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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