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수용한 ‘조건부 퇴진론’은 당·청과 범야권에 양날의 칼이다. 박 대통령도 집권여당도 범야권도 마주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일촉즉발 양상으로 치닫는 촛불정국의 출구전략 마련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촛불 정국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야당도 탄핵 카드밖에 선택지가 없다.
◆朴대통령, 즉각적인 퇴진 거부…촛불 거셀 듯
자신의 퇴진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박 대통령 ‘퇴진론’의 핵심은 권력이양 로드맵 방안 마련의 주체를 국회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즉각적인 퇴진론’을 거부한 박 대통령이 조건부의 ‘질서 있는 퇴진론’을 수용한 것이다.
개헌이 전제된 명예로운 퇴진 방안인 ‘임기 단축 포함한 진퇴 문제 결정→국회 추천 총리 및 거국내각 구성→조기 대선 일정’의 국면이 고차 방정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질서한 퇴진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퇴진 문제를 국회와 법 절차에 ‘백지위임’했지만, 속내는 임기 단축을 골자로 하는 개헌 카드로 야권을 뒤흔드는 ‘분열 술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 합의가 안 되면 ‘임기를 보장받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제3차 대국민 담화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밝힌 박 대통령이 ‘꼼수 정치’에 휩싸임에 따라 민심 수습책인 ‘퇴진 카드’는 지난 주말 눈발을 녹인 ‘190만 촛불항쟁’ 이상의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 명예로운 퇴진 시기를 실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퇴진론 선택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탄핵 소추안 발의 전이나, 의결 전에 질서 있는 퇴진론을 택하면서 탄핵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퇴진론은 여권이 탄핵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 전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 직후 ‘탄핵 원점 재검토’를 촉구했다.
◆탄핵 쥔 野 딜레마…특검동력 약화 우려
야권도 퇴로는 없다. 박 대통령의 ‘조건부 퇴진론’은 야 3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의 탄핵 드라이브에 불을 질렀다. 야권은 이날 일제히 박 대통령의 퇴진 시기 없는 퇴진론을 ‘꼼수’로 규정하며 탄핵 추진에 박차를 가했지만, 강경 일변도식 드라이브의 딜레마가 적지 않다는 점은 고민이다.
당장 급한 불은 탄핵 후 ‘국무총리 권한대행 체제’의 문제다. 야권은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을 주도한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 체제를 사실상 ‘박근혜 시즌 2’로 본다. 그간 야권 내부에서 “황 총리도 동시에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이다.
문제는 야권 내부에서도 탄핵 이후 ‘새 총리 추천파’와 ‘현 총리 권한 축소파’로 나뉜다는 점이다. 앞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전자 안을 제안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 등의 반대로 ‘탄핵 올인’ 기조로 선회했다.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이르면 내달 2일, 늦어도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현실화된다는 점에서 야권이 탄핵 강경기조 후 권력이양 로드맵 마련에 실패할 경우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87년 체제 헌법이 국무총리의 권한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보좌하는 역할’에 그치는 만큼, 법률안 거부권을 비롯해 개헌 발의권 등을 행사하기는 쉽다는 게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다. 다만 황 총리가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소폭 개각 등에 나설 경우 만만치 않은 갈등이 불가피하다. 현재 야권의 ‘탄핵 이후’ 로드맵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야권은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애초 야권은 탄핵과 특별검사(특검), 국정조사(국조) 등 삼각파도로 파상공세를 펼쳤으나,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론’ 수용으로 이슈가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야권이 디테일 승부에서 밀린다면, 삼각파도의 동력은 한층 약화될 전망이다.
차 교수도 “향후 특검이나 국조 등의 동력이 아무래도 약해질 수 있다”며 “야권도 국회 추천 총리 등 탄핵 이후 로드맵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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