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정부 조직개편과 인연이 깊다. 10년 전, 오렌지를 '오뤤지'로 적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던 한 인수위원이 대통령직 인수위에 농촌진흥청을 없앤다는 정부 조직개편안을 내놨다.
농촌진흥청에서 연구원들이 만들어 내는 특허를 등록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필자는 농진청 실적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고, 효율성도 더 높으니 없애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기초자료를 만드느라 하얗게 날을 지새웠다.
5년 전에는 국무조정실에 근무하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분리된 미래창조과학부의 국정과제를 담당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 필자는 농촌진흥청 조직팀장을 맡고 있다.
지난주에는 서울행정학회와 행정개혁시민연대가 공동주관하는 정부 조직개편 원칙과 방향에 관한 토론회에도 다녀왔다. 5년 단위로 대선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정도면 정부 조직개편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어떤 부는 분리하고, 다른 부는 없애며, 한 청은 부로 승격시킨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정부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정부 조직을 바꿀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대규모 조직개편이 행정의 일관성을 해치고 정부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을 뜯어고치는 관행을 없애려면 조직개편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
한국행정학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역대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성찰'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직개편이 관례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져 애초 취지를 실현하지 못했고, 목적 설정과 공감대 형성 측면에서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조직개편 효과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설문조사에서도 부정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48.7%로 나온데 반해, 긍정적이라는 시각은 15.9%에 불과했다.
그 보고서에서는 합리적 개편과 관리를 위한 조직개편 원칙으로 △조직개편 최소화를 통한 안정적 운영 △개편 목적과 내용 합리화 및 공유를 위한 소통 △전문성과 의사소통 등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접근 △기능조정·업무혁신 등 소프트웨어 개편 차원 접근 △법령체계에 부합하는 개편 △개편에 따른 변화와 효과에 대한 분석이 전제되는 접근 등을 제시했다.
이제는 우리도 국민의 공감을 얻는 합리적인 조직개편이 필요하다. 그런 조직개편을 위해서는 미래를 대비하는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 정부조직과 기업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다를 바 없으므로 기업의 사례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한때 미국의 부, 경쟁력, 성공적인 기업 모델의 상징이었던 GM은 2008년 리먼 사태 직후 큰 위기를 맞이했다. 찰스 어윈 윌슨 GM회장이 미 국방장관 지명 상원 청문회에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고,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GM은 고객이 원하는 차가 아니라 회사가 만들고 싶은 차를 자체 생산 계획에 따라 생산하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휴대폰 세계 1등 기업 노키아도 미래를 보지 못해 망했다. 노키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개발했으나 휴대폰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상황에서 경영진은 자기만족에 빠져서 이를 무시했다. 애플에서 스마트폰이 나오자 노키아는 일순간에 몰락의 길을 갔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채, 기업의 방향을 혁신제품 개발보다 비용관리 쪽으로 틀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고, 청년 취업난으로 국가 전체의 경기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도 있다. 지금과 같은 칸막이식 정부조직과 5년마다 반복되는 근시안적인 조직개편으로는 소통과 신뢰, 무경계성과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중학생 90% 이상이 가지고 있다는 스마트폰도 스티브 잡스가 공개한 것이 고작 10년 전이다. 그해 있었던 정부 조직개편 때 미래를 대비한 조직개편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소통, 국방·식량 등 든든한 안보, 정보를 활용한 새로운 산업 창출, 복지 향상, 양극화 해소 등 모두 미래 대비 조직개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새로운 정부 조직은 적어도 10년 뒤를 내다보고, 국민들이 공감하며, 정부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개편되기를 기대한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연구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