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달쯤 머물 생각으로 베트남 호찌민에 왔다. 중국과 비교하면 하노이는 정치적 색깔이 강한 수도(首都) 베이징을 닮았으며 호찌민은 국제적인 상업도시 상하이와 성격이 비슷하다. 현재 호찌민은 실질 거주 인구수 1000만명을 돌파하는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상하이의 개발이 떠오를 만큼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는 모양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가 불거지자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사드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베트남 진출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베트남 투자 규모는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1위로 단연 앞서나가고 있다. 베트남에는 이미 한국 기업이 5000여 개가 진출해 있고, 베트남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으로 한국 기업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베트남은 제조업에 적합한 경제적 환경이 조성돼 있다. 노동력은 풍부하면서도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다. 한국내 임금의 20~30%만으로도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있다. 인건비 절감형 업종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셋째, 베트남의 국민 정서는 한국과 이질감이 크지 않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가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유교적인 정서가 한국과 유사한 셈이다. 한국의 TV 드라마나 K-POP 등 한국 문화가 인기 있는 점 국내기업의 현지 적응에 도움이된다.
넷째, 1억명에 달하는 경제규모 역시 매력적이다. 향후 20~30년간 경제발전을 이루면 엄청난 내수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민들의 평균 연령이 30세인 것을 감안하면 미래 시장에 대한 선점 지역으로 이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이다.
다섯째, 전통적으로 중국에 대한 적대적 국민감정은 중국기업 진출의 진입장벽으로 존재한다. 한국 기업들의 최대 경쟁기업은 중국기업이다. 중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어려운 것도 우리에게는 유리한 기업 환경을 조성한다.
여섯째,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대표로 하는 국내 제조업체들의 모범적인 운영 사례는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인 사업가와 현지인들의 우호적인 관계는 후발주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트남은 글로벌 생산거점과 국제무역의 교두보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인도와 아세안 국가에 접근하는 교두보로 적합한 지역이다. 이에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중견기업도 글로벌 생산거점과 무역본부를 베트남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최근 밀폐용기와 주방용품 전문 기업인 락앤락도 베트남 호찌민으로 생산과 무역본부를 옮겼다. 베트남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기업들은 제조업과 무역의 거점뿐 아니라 부동산개발과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경제발전의 모델과 많이 닮아 있어,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서도 실현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베트남 부동산의 상당 부분을 한국인들이 매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문제 삼아 한국 기업들에게 경제적인 보복 조치를 가했지만 실익은 얻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대국이 소국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고 말았다. 중국이 '좋은 이웃'이 아니라 '나쁜 이웃'으로도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은 잠시 어려움을 겪는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 천년을 생존해온 역사를 가진 나라다. 무역에서도 최근 세계 10위권을 벗어나지 않은 무역대국이다. 중국이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항복할 나라가 아니다. 포스트 차이나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지구상 얼마든지 존재한다.
한국은 전략적으로 베트남을 '포스트 차이나' 지역으로 편입하고 중국과 의연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을 존중하고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 태도)의 철학으로 우호에 힘쓰고 공존공영(共存共赢)하는 좋은 이웃으로 대하기를 기대한다.
조평규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초빙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