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카·류옌둥의 두번째 조우…美中 북핵·통상 대리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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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0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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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국 대표 여성 정치인, 평창올림픽 무대서 회동

  • 개별면담 예상, 미중 갈등 고조 속 대화내용 촉각

  • 노련한 여걸 VS 美 정계 아이콘 만남도 관심거리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의 주미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건국기념일 연회에서 류옌둥 중국 부총리(맨 앞줄 왼쪽 첫째)와 이방카 트럼프(둘째), 재러드 쿠슈너(셋째) 부부가 추이톈카이 중국대사의 축사를 듣고 있다. [사진=신화사]


북핵 해법에 대한 이견과 통상 분쟁 격화 등으로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양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이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조우한다.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37)과 류옌둥(劉延東) 중국 부총리(73)의 대면 자체가 최근 현안을 둘러싼 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에서 소프트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정계의 아이콘과 권위적인 중국 공산당 체제 내에서 권력서열 10위권에 진입한 여걸의 만남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회담 성사된다면 메뉴는 북핵·무역

평창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할 미·중 고위급 인사로 이방카 고문과 류옌둥 부총리가 확정됐다. 이방카는 23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중국도 관영 신화통신 등을 통해 류옌둥의 방한 소식을 전했다.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대신하는 두 여성 지도자는 폐회식 때 외에도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 회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방카와 류옌둥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주미 중국대사관이 마련한 궈칭제(國慶節·건국기념일) 연회에서 대면한 바 있다.

당시 양국 고위급 소통 채널인 미·중 사회인문대화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류옌둥은 중국 측 최고위 인사 자격으로 대사관을 찾은 이방카와 남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맞았다.

두 사람은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양국 인문 교류의 중요성과 교육·과학기술·문화·환경보호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연회 전날에는 류옌둥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중국 국빈 방문과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는 시 주석의 구두 친서를 전달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적극 화답하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의 주미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건국기념일 연회에서 류옌둥 중국 부총리(오른쪽)가 이방카 트럼트, 재러드 쿠슈너 부부와 건배를 하고 있다.[사진=인민일보 ]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 직후 공동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은 3개월 넘도록 별다른 진전 없이 매번 양국의 이견만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중앙위 제1부부장의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가를 계기로 남북 간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을 놓고도 미·중의 온도차가 확연하다.

지난해 정상회담 때 중국이 미국과 2500억 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투자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등 돈보따리를 안겨주면서까지 봉합하기를 원했던 양국 통상 분쟁도 올해 들어 더욱 격화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를 추진하자 중국은 '보복 조치'를 언급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왕허쥔(王賀軍)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지난 17일 공식 성명을 통해 "보호무역은 국제 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미국이 중국의 국익을 훼손한다면 마땅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이방카와 류옌둥의 회담이 성사된다면 테이블 위에 오를 핵심 사안도 북핵 문제 해법과 양국 통상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남북이 대화를 재개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거론되는 데 대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한국을 측면 지원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게 고민이다. 이방카는 방한 기간 중 탈북 여성을 만나는 등 대북 압박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분야 역시 두 사람 모두 전문가가 아닌데다 G2(미국·중국)의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를 감안해 신중한 태도를 보일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이방카는 미국 소프트파워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고 류옌둥은 다음달 열리는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후로 일선에서 물러날 예정인 만큼 이번 회동에서 높은 수준의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통상 압박에 중국이 보복을 거론하지만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는 못할 것"이라며 "일부 마찰을 빚더라도 현재의 국제 무역 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게 중국의 본심"이라고 전했다.
 

2013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류옌둥 중국 부총리(오른쪽)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면담하고 있다.[사진=신화사 ]


◆70대 여걸 VS 30대 아이콘 '관심'

회담 성사 여부나 내용과 별개로 두 사람의 이력도 관심을 모은다. 각각 미·중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양국 정치 시스템의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인물인 류옌둥은 중국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 내 4명의 부총리 중 한 명으로 과학기술·교육·문화 분야를 담당한다.

97년의 중국 공산당 역사 속에서 권력의 핵심인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다섯번째 여성이다. 17·18기 중앙정치국 위원을 역임한 뒤 지난해 19기 선출 과정에서 7상8하(七上八下·67세까지 현직에 남고 68세부터 은퇴) 원칙에 따라 물러났다.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과 상무위원단에 들지 못한 부총리 3명 등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류옌둥은 권력서열 10위권 내로 평가된다.

1964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54년 동안 베이징의 말단 간부부터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 부부장(차관)과 부장(장관), 정협 부주석 등을 거치며 오른 자리다.

2013년 2월에는 중국 대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회동하는 등 한국 정·재계와도 다양한 인연을 맺어 왔다.

류옌둥의 사례에서 보듯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중국 정치권에서 깜짝 스타는 탄생할 수 없다. 공산당에 입당하는 순간부터 차근차근 한 단계씩 위로 오르며 업무 역량을 인정받고 혹독한 검증 시스템을 통과해야 비로소 고위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면 모델 출신인 이방카는 2015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미국 정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자 아버지와 함께 백악관에 입성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개방적이고 여론에 민감한 미국식 정치 토대가 이방카를 연예인에서 유력한 여성 지도자로 변모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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