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모스버거가 대표였다면, 이제는 국내에서 만드는 한국산 모스버거를 내세울 것이다.”
17일 서울 중구 모스버거 명동중앙점에서 만난 고재홍 모스버거코리아 대표는 알쏭달쏭한 이 말의 의미를 올 한 해 소비자에게 확실히 보여줄 계획이라고 자신했다.
1972년 일본 도쿄에서 시작한 40여년 전통의 모스버거는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는 ‘애프터 오더(After order)’ 방식을 토대로 인기를 끌어 아시아 9개국에 17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2012년 합작법인 형태로 진출해 어느덧 7년 차에 이르렀다. 고재홍 대표는 진출 초기 매장 30개를 열면 가맹사업을 검토하고, 300개로 확장하면 상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현재 점포 수는 직영점 12개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모스버거 철수설이 나오기도 했다.
◆반년 간의 협상··· 첫 자체 개발권한 획득
모스버거코리아를 둘러싼 이 같은 우려의 시선에 대해 고 대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매장 출점도 없고 조용하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거의 반년에 걸쳐 본사와 협의해 올해 초 ‘자체 메뉴 개발 권한’을 받아왔다. 지난 한 해는 여기에 모든 걸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체 메뉴 개발 권한이란 말 그대로 한국에서 소비자 입맛에 맞춰 메뉴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언뜻 보기엔 해외 진출하는 외식업체라면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스버거뿐만 아니라 일본 회사들은 자국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커 해외 법인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보다는 본사에서 꼼꼼하게 검수하겠다는 입장이 강해 결코 쉽지 않았다고 고 대표는 설명했다.
가맹사업도 마찬가지다. 모스버거 본사는 자국 외에 단 한 곳도 해외 가맹사업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 대표는 메뉴 개발 권한과 함께 가맹사업 동의까지 얻어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 같던 일본 모스버거 본사는 고 대표의 끈질긴 설득과 수치화된 자료 앞에 두 손을 들었다. 실제로 모스버거코리아는 각 점포에서 꾸준히 소비자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 결과 모스버거를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 매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 대표는 “사업 초반부터 일본 본사에 한국 시장에 대한 특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해왔다. 소비자 입맛에 맞춰 적기에 선보여야 하는 메뉴들도 있는데, 그때마다 본사에 동의를 구하고 다시 그쪽에서 한국에 와서 상의하면서 두세 달이 걸리면 시기를 놓쳐 버리지 않느냐”며 “지난 6년 동안 국내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을 조사해 자료화하고 이를 토대로 협상에 임했다”고 말했다.
모스버거코리아는 올해 안에 신사업으로 가맹사업 모델인 ‘모스버거 익스프레스’를 선보인다. 다음 달 초 잠실새내역에 모스버거 익스프레스 1호점을 열고 1~2개월 시범 운영 후 이르면 7~8월부터 가맹점주들을 모집할 방침이다. 2020년까지 100개점 개점이 목표다.
고 대표는 “익스프레스의 경우 부부 가맹점주 2명 기준 10~15평 규모 가게에서 인테리어를 포함해 창업 비용 1억원 내외로 투자하는 모델이다. 메뉴는 기존 스탠더드형 직영점에 비해 적은 5~6개로 줄인다. 포장주문(테이크아웃)과 스탠딩석 위주로 효율을 높일 예정이다. 물론 키오스크도 설치한다”며 “이는 소비자에게도 접점 강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한입까지 ‘식지 않는’ 버거
고 대표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국내 자체 메뉴 개발에도 참여했다. 일본 본사에 자체 메뉴 개발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경쟁력 있는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모스버거코리아는 지난 1월 2일 메뉴를 전면 개편했다. 한국인 입맛에 맞춘 버거 △모스BBQ치즈버거 △모스클래식치즈버거 △아이올리치즈버거 △데리불버거 △우마미와규버거(이하 우마미버거)를 출시했다. 레귤러 사이즈 메뉴 기준 △모스치즈버거 △데리야끼치킨버거 △새우카츠버거를 제외한 모든 메뉴는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메뉴다. 비율로만 보면 6대4 다.
이와 함께 순 쇠고기 패티 사이즈를 30% 더 증량하고 번을 더 폭신하게 만들었다. 번에는 계란 흰자를 씌워 윤기가 나면서 쉽게 축축해지지 않도록 했다.
고 대표는 “특히 우마미버거는 햄버거 마니아층이 좋아하더라. 이제까지 그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 제품 출시 이후 블로그나 댓글에서 ‘톱 오브 톱’이란 평을 처음 봤다. 개인적으로 뿌듯했다”며 눈을 반짝였다.
실제로 제품 개발에 참여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이다. 그는 인터뷰 중간 즉석에서 우마미버거 시식을 제안했다.
앞서 설명한 패티 크기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통 햄버거 빵과 패티 크기는 비슷하지만, 모스버거코리아는 메뉴 개편 이후 빵보다 패티 크기가 좀 더 커졌다. 우마미버거에는 국내 버거 업계 최초로 슈레드 치즈를 구워 사용했다. 슈레드 치즈는 피자에 주로 사용하는 데다 국내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구하기가 어려워 코스트코에서 구매해 쓰고 있다.
치즈를 녹여 빵과 재료의 접착력이 높아진 데다 고소하면서도 짜지 않은 풍미가 기자의 식욕을 자극했다. 어느새 마지막 한입을 남겨둔 찰나, 손끝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음을 느꼈다.
식지 않는 버거를 만들기 위해 고 대표는 지난 9개월 내내 수백 번의 실험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마미버거에는 토마토를 뺐다. 토마토에서는 물이 많이 나와 버거가 빨리 식고 빵이 젖기 때문이다. 햄버거가 축축해지면 형태가 망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맛도 떨어진다. 소스도 물과 같은 질감의 것은 배제했다.
고 대표는 “패티 크기를 바꾸자는 건에 대해서는 지난해 초 본사와 합의했다. 그 패티를 가지고 어떤 버거를 만들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결정하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신제품 개발권한을 가져왔다. 토마토랑 소스를 바꾸니 따뜻함이 아주 오래가더라. 테이크아웃해서 3~4시간 두고 먹어도 모양이 그대로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모스버거코리아가 지난 1월 2일 내놓은 한국 신메뉴 3종 모스BBQ치즈버거, 아이올리치즈버거, 모스클래식치즈버거는 현재까지 전체 버거 판매량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모스BBQ치즈버거는 매장당 하루 판매량 100여개로, 출시 이후 꾸준히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브랜드 주인보다 ‘소비자 사랑’ 우선
현재 모스버거코리아에서 일본 오리지널 메뉴와 한국 로컬 메뉴 판매 비중은 3대7이다. 브랜드 자체는 일본 태생이지만, 국내에서 자체 개발 메뉴로 승화시킨 셈이다. 고 대표의 끈기가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모스버거코리아는 일본 모스버거의 전통이나 조리법, 철학, 청결 등에 대한 DNA를 그대로 가져가고 장점은 십분 활용해 그것을 통해 한국인 입맛에 맞는 버거를 개발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일본 모스버거에서 40년 넘게 메뉴 개발을 도맡아 온 시노하라씨가 현재 상품개발팀에서 한국 모스버거에 대한 메뉴 지원을 하고 있다.
고 대표는 “한국인 입맛에 맞추되, 모스버거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균형을 잘 잡아나가고 있다”며 “모스버거의 특징은 맛있고 다채롭고 독특한 메뉴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는 버거를 개발해 마니아층을 많이 생성한 다음 모스만의 동양적인 시그니처 버거들도 계속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냉면만 해도 평양냉면 굵기는 이래야 한다, 원조는 어때야 한다고 따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누가 주인이냐보다 소비자가 어떤 것을 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한국 모스버거에서 만드는 제품에 대한 저작권은 우리가 갖기로 했다. 호주처럼 모스버거 법인은 있지만 가맹사업은 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나, 베트남처럼 모스버거 자체가 없는 곳에서 한국 메뉴로 승부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포부를 조심스레 밝혔다.
한국산 모스버거를 가지고 해외 진출하는 것. 고 대표에게는 국내에서 모스버거코리아로 상장하는 것보다도 더 큰 꿈이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가맹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고 대표는 “일본 모스버거에는 공영회가 있다. 말 그대로 같이 번영하는 모임이다. 공영회를 통해 가맹점주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한다. 한국에서 지난 7년 동안 백화점, 로드숍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부분들이 가맹점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로열티 외에는 소모품이라든지 다른 부분에서 수수료나 이익을 취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또 “지금까지 한·일 양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협의 기간이 길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한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안착시키고자 하는 바는 같지만 그 과정에서 문화적인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조정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6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같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올해는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사업을 벌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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