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시장 전망대로 3월에 이어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 연내 4차례까지 금리 인상이 가능하다는 여지도 남겼다. 유럽중앙은행(ECB)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연준의 금리 인상 조치에 대응책을 마련 중인 가운데 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신흥국 경제가 살얼음판 위에 놓이게 됐다.
◆신흥국 위기 현실화··· 터키 리라·남아공 랜드화 등 줄줄이 하락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소식이 전해지자 신흥국 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로이터통신의 1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신흥시장 중대형주 주가를 반영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EM) 주식지수는 연준의 발표 이후 전날보다 0.4% 하락한 1135.68에 거래를 마쳤다. MSCI 신흥시장 통화지수는 전날 0.2% 내린 데 이어 이날도 연속 하락했다.
신흥시장 주식 상장지수펀드(ETF)의 대표선수 격인 EEM은 미국 증권시장이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던 지난 1월 26일 이후 1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CNBC는 전했다. 신흥국 증시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신흥시장 상장지수펀드(EM ETF) 변동성지수는 4.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강세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한 데다 자국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도 급락했다. 터키 리라화는 하루 만에 2% 추가 하락하면서 달러당 약 4.67리라 수준을 보였다. 터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5.92%를 기록한 반면 달러 표시 채권은 1센트 이상 떨어졌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는 최근 국내총생산(GDP) 데이터 발표로 시장에 충격을 준 뒤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악재까지 더해지며 6개월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날 남아공 랜드화는 달러당 13.27랜드를 나타냈다. 이 밖에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연초 대비 38% 떨어졌고, 브라질 헤알화는 1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 루피화의 통화 가치도 연초 대비 약 6% 떨어졌다.
◆뉴욕·아시아 증시도 출렁··· 미 국채금리·금값은 상승
뉴욕증시와 아시아 증시도 연준의 금리 인상과 무역 갈등 우려가 겹치면서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날 대비 0.47% 내린 2만5201.20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도 줄줄이 하락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일본 도쿄 증시의 닛케이 225지수는 전날보다 0.70% 하락 출발해 장중 2만2771.37포인트까지 떨어졌다. 홍콩 항셍지수는 1.04% 하락 출발했다. 특히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이날 기준금리를 현행 2.0%에서 2.25%로 0.25%p 상승 조치한 것도 증시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코스피와 코스닥도 각각 0.92%, 0.52% 하락 출발했다.
반면 미 국채금리는 또다시 반등해 시장 우려를 고조시켰다. 13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날 대비 0.68%p 오른 2.977% 수준을 나타냈다고 CNBC 등 외신이 전했다. 심리적 저항선인 3%를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자본 유출 등 신흥국 경제에 대한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값은 상승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8월 인도분 금값은 전날보다 온스당 1.30달러(0.10%) 상승한 1302.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4일 개장에 앞선 선물 거래에서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공포지수'로 통하는 변동성지수(VIX)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마지막 거래일 대비 4.86% 높은 12.9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얼음판 걷는 신흥국··· "하반기까지 약세 이어질 것"
연준의 금리 인상 조치에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관심이 쏠린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마이너스나 제로 수준으로 금리를 유지하면서 완화 정책에 동참해 왔으나 연준의 긴축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탓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도 미국과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자금 이탈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양적 완화(QE)로 매입해왔던 국채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성장 둔화, 미국과의 무역 갈등,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 등의 악재를 만난 ECB가 출구 전략 채택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이유다.
일본중앙은행(BOJ)도 15일까지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다만 경기 회복이 약세를 보이는 데다 인플레이션이 높지 않아 당분간 완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보도를 통해 BOJ가 인플레이션 달성 목표치(2%)의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6월이 신흥국 경제의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의 제이슨 도 애널리스트는 "각종 리스크가 심화되면서 신흥시장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대부분의 펀더멘털이 견고하긴 하지만 올해 하반기 신흥시장의 약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