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방식을 두고 간극을 좁히지 못했던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마침내 협상 초안을 내놨다. 585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가장 큰 쟁점으로 꼽히던 '아일랜드 국경'과 '이혼 합의금'에 있어 상당한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교착 상태에 빠졌던 만큼 '결정적인(decisive)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개 EU 국가가 협상을 승인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점 없이 EU를 이탈하는 것)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남아 있다.
◆ 영국 탈퇴 초읽기 돌입하나...25일 EU 정상회의 승인 분수령
EU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인 미셸 바르니에는 14일(이하 현지시간)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의는 브렉시트 협상을 마무리짓는 데 결정적인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영국 정부도 브렉시트 협상 합의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양측 의회 비준을 남겨두고 있지만 사실상 영국의 EU 탈퇴가 초읽기에 돌입한 것이다. EU는 이르면 오는 25일께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합의문 승인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전했다.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르면 EU를 탈퇴하려는 국가가 탈퇴 의사를 공식화한 시점부터 최초 협상 기한이 2년으로 설정된다.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지 9개월여 만인 지난해 3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면서 브렉시트 발효 시점은 2019년 3월 29일로 확정됐다. 이 시점부터 21개월 뒤인 2020년 말까지 추가 협상을 진행, 완전한 브렉시트로 전환된다.
오랫동안 표류하던 영국과 EU 간 협상이 접점을 찾으면서 빠르면 이달 내에 브렉시트 협상 합의문에 서명하는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합의문에는 영국의 EU 탈퇴 조건이 담겨 있다. 서명 절차는 양측이 사실상 새로운 정치적 관계에 접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이후 약 30개월 만에, 본격적인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한 지 17개월 만에 본격적인 탈퇴 준비를 밟는 셈이다.
◆ '노딜' 브렉시트 우려 여전...'백스톱' 카드 만지작
일단 협상에서 중요한 고비를 넘겼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영국 내부에서 강경 브렉시트파와 EU 잔류파가 격하게 대립하고 있어 브렉시트의 마지막 단계인 의회 비준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탓이다. 1차 협상에서 △ EU 분담금 정산 △ EU 회원국과 영국 간 이동의 자유 △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국경 문제 등이 주를 이뤘다면 2차 협상의 주요 의제는 영국과 EU의 무역 문제에 집중돼 있다.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 국경 문제에 대해서는 '규제 일치(regulatory alignment)' 방안이 주목을 받았다. 규제 일치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통관 없이 자유로운 통행과 운송이 가능한 체제다. 다만 양측의 합의가 결렬될 경우 '백스톱(영국이 합의하기 전까지는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것)'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논란은 여전하다.
이는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를 사실상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남기는 것으로, EU 탈퇴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동안 영국이 EU 시민의 영국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EU 단일시장과 EU관세동맹 이탈을 감수하는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했던 만큼 필요한 부분만 취하는 '체리피킹'식 입장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협상 합의문에 따라 영국이 EU와의 '이혼합의금' 명목으로 향후 수년에 걸쳐 400억~450억 유로를 납부하기로 한 점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의회 비준 불발로 영국이 아무런 합의점 없이 EU를 이탈하는 이른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선택지에 남아 있다. 조기총선이나 제2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가 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BBC를 비롯한 외신들은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내 불만도 적지 않은 상황이어서 EU와의 합의가 순조롭게 이어지더라도 의회 비준을 얻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며 "EU와의 최종 합의 이후 국회 비준 등 중요한 국면을 앞둔 만큼 메이 총리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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