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자동차의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일본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본인의 보수를 축소 기재하는 등 부정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되면서 업계 후폭풍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년 경영 전설로 꼽히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면서 르노·닛산·미쓰비시 등 3사 연합체의 경영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전설의 경영자'에서 부패 상징으로..."보수 허위 기재"
1954년 레바논계 이민자로 브라질에서 태어난 곤 회장은 학교를 졸업한 뒤 18년 동안 유럽 최대 타이어제작업체인 미쉐린에서 일했다. 미쉐린 남미지사의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된 뒤에는 직원들의 다양한 국적을 아우르는 전략을 바탕으로 2년 만에 높은 수익을 올렸다. 1990년에는 미쉐린 북미 지역 최고경영자(CEO)로 승진했고 1996년에는 엔지니어링·개발·제조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서 르노자동차에 입성했다.
1999년에는 경영 위기에 빠진 닛산의 COO 자리에 올랐다. 그해 3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결성했고 5월에는 닛산의 지분 36.8%를 매입했다. 엄청난 비용 절감과 정리해고 정책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철저한 경영 합리화를 추진한 결과 닛산의 실적을 회복시키면서 '경영 전설'로 평가받았다. 2001년 6월에 CEO로 지명됐고 프랑스 르노의 회장 겸 CEO를 겸직하다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돼 4년 임기를 추가로 보장받았다.
20년간 닛산의 명성을 떠받쳐온 곤 회장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9월 무자격 직원에게 출고 전 신차 검사를 맡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차량 100만대 이상을 무더기 리콜 처분했다. 지난 7월에는 배기가스와 연비 측정 시험 결과를 조작하는 등 비슷한 형태의 부정행위를 계속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NHK와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자사 유가증권 보고서에 자신의 보수를 축소, 허위 기재한 혐의로 곤 회장을 체포했다. 2011~2015년 자신의 실제 보수보다 총 50억엔(약 501억5350만원)가량 적게 기재한 유가증권 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다. 일본 검찰은 요코하마시에 있는 닛산자동차 본사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자동차업계 파장 주목...최대주주 프랑스 정부 "지켜보겠다"
닛산자동차의 내부 고발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이번 사건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기업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곤 회장의 체포 소식이 나온 19일 파리 증시에서 르노자동차의 주가는 장중 15%까지 떨어졌다가 낙폭을 줄이면서 8.43% 하락 마감했다. 20일 도쿄증시에서 닛산자동차 주가는 전날 대비 6% 하락한 수준에서 장을 열었다.
업계에서는 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연합체의 경영 방침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의 닛산, 미쓰비시는 복잡한 지분 구조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 전략적 동맹 관계다. 3사 연합체의 지난해 자동차 판매 대수는 1060만 대를 넘어서면서 세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곤 회장이 르노·닛산을 떠날 경우 3사 연합체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건을 두고 르노측 프랑스 경영진과 일본 경영진 사이에 곪았던 불협화음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르노그룹의 최대주주는 지분 15.01%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다. 닛산은 지분 1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그간 프랑스 정부는 르노·닛산의 합병을 요구했으나 곤 회장이 거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리서치 회사인 번스타인의 자동차 부문 애널리스트인 맥스 워버틴은 "공유 차량과 자율주행차량 등 인터넷 연결 기반으로 옮겨가는 자동차 업계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기술 확보와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해 기술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있다"며 "곤 회장의 부재에도 (얼라이언스가) 잘 유지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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