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시작한 함안 가야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아라가야 판축토성을 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 구조물과 이를 사용한 축성기술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올해 발굴조사는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의 중심 유구인 토성이 축조된 방법을 규명하기 위해 성벽을 중심으로 우선 진행했다. 조사 결과 토성벽 내부에서 중심토루(굴착 공사에서 특정부문의 지지물) 구간을 중심으로 판축성벽 축조와 관련된 나무기둥(목주)과 횡장목(판축 시 가로방향으로 고정시킨 목재) 등 목조 구조물들과 달구질(성토다짐) 흔적을 확인했다.
판재를 지지하는 영정주(나무기둥)은 성벽 기초부에 성벽을 따라 중심토루 내외곽에 약 60~80cm의 간격으로 열을 지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팎으로 약 6m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설치된 나무기둥 사이로는 중심토루가 있었다.
중심토루에서 성토방법이 확연하게 차이나는 지점(축조구분선)이 확인돼 이를 통해 성벽을 구간별로 나눠 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축조구분선 바로 서편에서 점성이 높고 고운 점질토를 달고(땅을 단단히 다지는데 쓰는 기구)로 두드려 다진 흔적(지름 8~10cm)도 확인됐다. 달구질 흔적은 영정주와 횡장목으로 구성된 목조 가구와 함께 판축공법(나무기둥과 판으로 틀을 만들어 흙을 넣고 달고 등으로 다져서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고대 토목공법)이 아라가야 왕성의 축조 당시 차용됐음을 알려주는 유력한 흔적이다.
조사 범위에서 전체적으로 확인된 목책은 단면조사 결과, 중심토루를 파고 지름 30cm 정도의 나무기둥을 되묻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함안 가야리 유적의 토성이 가야권역 내의 동시기 유적과 비교할 때, 그동안 발견된 사례가 없는 축조기법과 규모를 보이고 토성벽 축조 공정마다 영정주와 횡장목으로 구성된 목조 가구를 설치해 판축상의 성토다짐(달구질)을 하는 등, 정교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토성의 규모는 현재 조사구역 내에 한정지었을 때, 전체 높이는 약 8.5m, 폭은 20m 내외다. 이 같은 축조기법과 출토 유물, 탄소연대 등을 통해 추정하면 아라가야 왕궁지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밝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함안 가야리가 최근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이 일대에 대한 기초조사와 중장기 발굴조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 연구를 진행할 예정으로 아라가야 왕성의 전체적인 규모와 공간 배치, 유물 등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연구가 이뤄지면 가야사 복원과 연구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함안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한 고을의 연혁과 지리‧인물‧생활‧문화‧풍물 등을 기록한 책) ‘함주지’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 등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었고,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돼 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5월 발굴조사를 시작해 토성벽, 목책, 건물지 등 다양한 왕성 관련 시설과 유물들을 확인해 지난 21일 사적 제554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31일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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