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케이 마담'(감독 이철하) 속 미영은 자칫 억척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캐릭터다. 생활력 강한 '엄마'를 억척스럽고 비호감적인 인물로 그리는 건 으레 코미디 영화가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이철하 감독은 미영에게 그런 실수를 범하진 않았다. 그는 미영을 생활력 강한 엄마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위기로부터 승객을 구하는 영웅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런 미영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건 배우의 몫. 배우 엄정화가 해야 할 역할이었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극 중 미영은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산 여자라 행동 하나하나에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신감이나 애교 같은 게 과하게 느껴질까 봐. 보기 민망할 것 같아서 걱정했었어요. 그런 모습을 경계하다가 어느 순간 확 내려놓았죠."
엄정화는 미영 역에 '적격'이었다. 미영의 디테일을 완성한 건 엄정화가 가진 '사랑스러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미영의 면면들을 꺼내고 녹여내 미영이라는 인물을 사랑스럽게 풀어냈다.
엄정화의 마음을 흔든 건 "어려움이 큰" 작품들이었다. 그런 시나리오를 만날 때마다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작품들이 있어요.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당기더라고요.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내가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영화 '오케미 마담'도 마찬가지였다. 미영은 여러 면면을 가지고 있고, 그의 극과 극 매력은 엄정화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특히 미영이 펼치는 액션 연기는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했다.
"조바심이 났어요. 시간이 모자랄까 봐! 투자 확정이 나기도 전에 액션 스쿨을 다녔어요. 하하. 영화가 엎어진다면 어쩔 수 없지만, 촬영이 시작된다면 제게 '플러스'잖아요? 액션은 정말 힘들었지만 해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찍으면서 즐기려고 했죠."
미영의 액션 주 무대는 비행기 안이다. 화장실, 복도, 좌석 사이 등 좁은 기내를 누비며 테러리스트를 제압했다. 배우들 간 합이 중요한 액션이었다.
"서로 다치게 할까 봐 걱정이 많았어요. 공간도 너무 좁아서 압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처음 세트 안에서 (액션) 연기할 땐 눈물도 흘렸어요. 좁은 공간에 대한 압박이 있었거든요.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했고 서로 조심히 하면 된다며 기운도 북돋웠어요."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 미영이라는 캐릭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편 석환이다. 두 사람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도 신혼부부처럼 알콩달콩하게 사랑을 키워가는 인물. 액션 연기만큼이나 배우 합이 중요했다.
"처음에 박성웅 씨가 캐스팅되었다고 했을 때, '무서운 분이면 어떡하지' 했어요. 어떤 선입견이 있던 거예요. 저 스스로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서 (영화를 찍을 때) 몸을 사리지 않았었는데. 그런 저조차도 선입견을 품고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굉장히 바보 같은 걱정이었어요. 굉장히 재밌고 좋은 분이고요."
미영과 석환의 알콩달콩한 장면들은 대개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박성웅은 기자간담회에서 "거의 모든 장면이 애드리브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서로 투닥투닥 하는 장면에서 석환이 미영에게 '예쁘게 생기면 다야?'라고 하는데 빵 터졌었어요. 촬영할 때도 다들 그 대목에서 웃으셨는데 막상 시사회 날에는 (관객들이) 안 웃더라고요. 내가 진짜 예쁘게 생겨서 그런가? 하하하. 영화 특성상 자유로운 부분이 많아서 첨가했다가, 뺐다가 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배우들끼리 호흡도 잘 맞고 작품에 워낙 애정이 큰 터라 '오케이 마담' 속편에 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었다고.
"배우들끼리 2편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하하하. '이번엔 디즈니랜드에 가자' '배를 타고 가보자'고 했죠."
정식으로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엄정화는 작품을 통해 부딪치고 깨지며 그 인물이 되어가곤 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몰아가며 작품 속 인물이 되어가고자 한 것이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어요.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냥 무작정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죠. 꼭 그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가아요. 연기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엄정화는 '댄싱퀸' '미쓰 와이프' 같은 작품이 숨구멍이라고 털어놓으며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에 임할 때면 마음이 무겁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코미디부터 스릴러, 액션까지 아우른 엄정화가 앞으로 만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여배우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길 기다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남자들은 그런 게 많잖아요? 김혜수 씨, 전도연 씨, 천우희 씨는 실제로도 친분이 있지만, 작품에서도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정말 멋있는 친구들이거든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의 우정이나 범죄물도 좋고. 장르 불문하고요."
엄정화는 배우이기 전에 수많은 히트송을 가진 가수기도 하다. '배반의 장미' '몰라' '초대' '페스티벌' 등 내놓는 곡마다 히트를 했고, 유행을 선도하며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무대도 그립죠. 예전엔 트렌디함에 대한 부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빨리 가기도 했고. 당시 일레트로닉이 낯설었을 때 그 장르로 한 앨범을 다 만들기도 했었고요.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시급했죠. 지나고 보면 그런 게 있어서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도할 때, 제 마음이 원할 때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달리고 싶은 그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안 그래도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콘텐츠라기보다는 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서핑도 다니고 슈퍼(엄정화의 반려견)와 함께하고…. 사진보다 생생하더라고요. (이)소라에게 편집을 배우고 있어요."
최근 엄정화는 웨이크 서핑을 배우고 있다. 그는 물 위에서 불안함을 하나씩 지워가고 또 온전히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게 많고 또 배워나가고 있는 상태. 매일 매일 성장하는 중이다.
"어릴 때 제 모든 관심은 일, 도시, 친구였어요. 일하는 게 제일 좋고, 도시 안에 있는 게 좋았죠. 여행도 항상 도시로만 다녔으니까요. '슬로우'한 걸 못 견뎠는데 서핑을 배우면서 알게 됐어요. 바다에 떠 있을 때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해요. 천천히 나를 위해 주어진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됐죠. 기다림도 지치지 않고 즐길 줄 알게 됐고요. 하루하루 채워가고 있어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