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토반' 고아성 "나름의 신념, 영화에 우러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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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10-2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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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고아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영의 별명은 '오지랖'이다. 친구가 부당한 일을 겪거나 슬픔에 빠진 것 그리고 불의를 보고서는 좀체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참견'은 타인에 관한 사랑에서 불거진다. 회사에서 폐수를 무단 방류하고 이를 덮으려 하자 그가 나서게 된 것도 일과 직장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영의 단단하고 곧은 성정. 배우 고아성(28)과도 닮아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은 1995년을 배경으로 입사 8년 차에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인 세 친구가 우연히 회사의 비리를 알게 되고 이를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아성이 연기한 자영은 품행이 바르고 성정이 올곧은 인물이다. 마치 그가 연기했던 서봄(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나 만지(영화 '우아한 거짓말'), 주미(영화 '오빠생각'), 유관순(영화 '항거')처럼 말이다.

"저는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가치관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해왔고 제가 가진 마음에 영화에 우러나길 바라요. 돌아보니 일관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때그때 저의 신념이 담겨 있어요."

그는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항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까지 나름대로 '결'이 같은 인물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고 최근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 인물들이 되고 싶었던 마음인 거죠. 제가 지금 관심 있는 건, '존경할만한 사람'이거든요."

그가 연기한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올곧은 인물들 때문일까? 대중들이 생각하는 배우 고아성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이런 역할을 맡을 만큼 정의로운가?' 그 이야기를 이종필 감독님께 공유했는데 감독님께서도 그런 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내가 이런 걸 찍어도 되나?' 고민했다고 솔직히 말해주셨어요.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될 수는 없지만 매일 그렇게 지내려고 노력한다'라고요. 길에 무언가 쓰러져 있으면 세우는 그런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행동하게 됐어요. '실천하면서 바꿔야겠다'고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고아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가진 맑은 기운은 감독과 배우들을 움직였다. 시나리오를 보고서도, 영화를 찍으면서도 고아성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시나리오만 보고 이 작품에 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감독님 필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뭔가 (마음에) 다가오는 게 있었어요. 결과물은 그것보다 더 좋더라고요. 더 풍성해진 느낌이죠."

최근 고아성이 출연한 작품들은 '여성 연대'를 특징으로 한다. 영화 '항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가 갈망했던 바이기도 하다.

"'여성 연대'가 사실 더 새롭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근 1년 간 여성 영화들이 많이 등장했고 모두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배우들의 역할은 그들의 노력을 보다 더 '웰메이드'로 느끼게 만드는 거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고아성은 '인물들의 호흡'이 가장 중요할 거라 판단했다. 극 중 자영과 유나(이솜 분), 보람(박혜수 분)이 극을 이끌어나가고 관객들의 '감정'도 움직일 거라 판단한 것이다.

"자영이 먼저 비리를 목격하고 친구들을 끌어들이지만 결국 모두 함께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완성되는 거예요. 세 명의 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요."

걱정이 컸지만 세 명의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고아성은 직감했다. '아! 되겠다.'

"우리가 만나고 30분 만에 그런 확신이 들더라고요. 좋은 사람들이고 굉장히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고 뭔가 만들 수 있겠다는 기분이 계속 계속 들더라고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솜, 고아성, 박혜수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영화 '항거'에서도 여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이야기를 꾸려간 경험이 있다. 8호실에 수감된 이들과 영어 토익반 친구들도 비슷한 규모였기 때문에 낯설거나 막막하지는 않았다고.

"'비슷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첫 촬영을 마치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항거'와는 다른 세계에요. 더 에너지틱하고 활기찬 느낌이에요."

유나 역의 이솜과 보람 역의 박혜수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그는 세 명이 모여 '상호보완적'인 힘을 갖추었다며 더욱 매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스타일도 다르고 연기하는 방식도, 성격도 모두 다른데 우리 셋이 바라보는 방향은 똑같았어요. 그러니 더 호흡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려있는 사람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니까요."

지방 촬영이 많았던 덕에 세 사람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8년 차 베테랑 직원이자 동기라는 설정을 위해 잦은 모임을 하던 이들은 결국 '합숙'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함께 지내면서 더욱 차진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서로를 내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를 찍을 때 (현장에) 연극배우들이 많았어요. 그분들께서 (연극배우들은)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서 종이컵을 구겨서 '컵 차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대사 주고받는데 도움이 된다면서요. 그런데 우리끼리 합숙했을 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생활감이 느껴지다 보니 서로 주고받는 말이나 호흡도 자연스레 흘러갔어요."

고아성은 그간 영화 '오피스'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라이프 온 마스' 등을 통해 회사 생활을 간접 체험해왔다. 80년대부터 90년대 최근까지 모두 경험해본 셈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찍으면서 회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라이프 온 마스'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도 노골적인 차별이나 변화가 느껴지잖아요. 처음 세트장에 들어갔을 때 구조가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과장, 부장, 대리가 같은 자리에 앉아있고 복도에는 여직원들만 마주 보고 앉는 자리가 있더라고요. 현대극에는 없는 요소죠."

커피를 타고, 잡일을 도맡는 것도 낯설었다. 그는 극 중 대사인 "커피믹스가 왜 인기인 줄 알아?"를 인용하며 순간순간 마주하는 장면을 위해 당시 사회상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고 거들었다.

"90년대 회사에 다니던 사람들을 많이 연구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시대상을 공부하게 됐죠. IMF 이후 커피 믹스 생산량이 급증했는데 그 이유가 대대적인 정리해고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커피를 타주던 여직원들이 해고되니 커피 믹스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가슴 아팠어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고아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외에도 고아성은 캐릭터에 시대를 드러내기 위해 '말투'를 익히기도 했다. 이는 최근 온라인에서 주목하고 있는 80~90년대 서울 말투를 캐릭터에 적용한 것인데 당시 뉴스 등 인터뷰에 임하는 일반인들의 말투가 현재와 다른 것임을 포착해 캐릭터에 적용했다.

"'라이프 온 마스'에서 80년대 말투를 연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많은 분이 그걸 알아채고 좋아해 주셨거든요. 시대극 느낌을 내려면 그 시절 무드를 비슷하게라도 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라이프 온 마스'를 답습하는 건 싫고…. 계속 연구하다가 80년대와 90년대 말투가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80년대는 조금 더 수줍은 느낌이라면, 90년대는 더 당당해요. 일하는 여자들도 많아지고 그런 '당당함'이 트렌드였거든요. 전반적인 시대 분위기를 읽어볼 수 있었어요."

고아성은 그때 그 시절을 익히기 위해 주변 어른들을 소환했다. 가까운 어른들에게 말투를 확인받기도 하고 그 시절 영상들을 보며 익히기도 했다.

"이모가 그 시절 대기업에 다니셨거든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이모의 그 시절을 많이 보게 되었어요. 당시 찍었던 사진도 보여주셨는데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이게 우리 이모뿐만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많이 기억하고 더 생생하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92년생인 고아성은 이제 30대를 앞두고 생각을 정리 중이다. '여자 나이'라는 고리타분한 소리가 아니라 데뷔 23년 차를 맞은 배우로서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정비하기 위해서다.

"사실 실감이 잘 안나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23년 차더라고요. 경력이 쌓이는 데 적응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30대가 되면 더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희망을 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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