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의 국제정치를 큰 그림에서 보면,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가 흔들리면서 국제질서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국내정치의 요구에 따라 국제관계가 출렁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으나, 국제정치의 거친 파도가 다시 일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국제관계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될 요인은 최근 미국의 정권교체이다.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고 동맹 중시를 표방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기 전에 미국일방주의가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이전의 미국일방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이전의 미국일방주의가 미국이 중요한 국제문제에 대해 결정권을 갖겠다는 것으로서 미국의 힘을 드러낸 것이었다면,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미국이 손해보지 않고 실리를 찾겠다는 것으로서 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국내정치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임했고 국제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든은 오랜 외교경험을 가지고 있어 주류의 사고(main stream thinking)에 기반한 정책을 펼 것이다. 물론 이것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시대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근간은 경제적 실리추구였다. 바이든 외교정책의 핵심목표는 무엇일까. 필자의 예상은 전제주의 세력을 견제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이를 이상주의 차원에서 보는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는 냉혹한 현실정치에 뿌리를 둘 수밖에 없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독재자들에 대한 압박을 통한 인권외교는 실패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힘의 과시를 통한 적극적 개입정책은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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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중국과 이란을 노골적으로 견제했다. 반면에 러시아, 북한과는 전략적으로 우호적인 소통을 시도했다. 그의 중국에 대한 견제에는 중국의 가치체계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경제대국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단순한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중국, 러시아, 북한 모두에 대해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에 대해서는 견제는 계속하되 확장을 막을 방법론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그동안 자신의 경제력과 위상에 걸맞은 외교를 펼치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러 갈래, 여러 모습의 국제문제를 논의하는 책임있는 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자신의 좁은 시야에 보이는 문제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이슈, 그중에서도 미·북 간 대화 주선이 외교정책의 핵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비전이 결여되고, 전략이 결여되고, 정책집행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이미 세계경제의 큰 부분을 점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장기적 관계설정을 향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물론 이를 위해 미국과의 튼튼한 동맹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다.
한국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땀흘려 경제를 발전시키고 피흘려 민주정치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서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진보에는 일정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나라의 힘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에 등한히 하고 있다. 그럴 듯한 구호만 외칠 뿐, 제대로 된 정책목표도 정책수단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가 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려면 다음 정권까지 기다려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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