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책정하는 안전보건관리비 요율이 8년째 제자리인 데다 정부기관이 발주한 공공공사의 저가낙찰, 비정규직 위주의 '위험 외주화'가 만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5일 서울 켄싱턴 호텔에서 아주경제가 주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보완입법 방향' 포럼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주제발표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주로 법인에 책임을 묻는 데 반해 기업처벌법에서는 법인과 별도로 개인인 사업주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연구원은 그동안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았던 원인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규정이 미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중대재해법이 제기된 취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근본적으로 안전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문제가 공사기간의 무리한 단축, 자재비용 절감, 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작년 평택 물류센터 붕괴사고(5명 사상)도 시공했어야 할 안전공사의 자재비를 빼고 공정을 무리하게 줄이면서 발생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비는 공사비의 1.2~3.43% 수준이다. 돈이 부족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보호구도 받지 못한 사례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안전보건관리비 요율은 2013년 부과기준이 마련된 지 24년 만에 한 차례(전체 평균 7.6%) 인상된 후 현재까지 변하지 않은 상태다.
이 연구원은 "정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을 고치겠다거나 규정을 바꾸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는데 정책은 이미 충분하다"며 "문제는 바꾼 매뉴얼이나 규정을 집행할 돈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관리비가 부족한 원인으로는 '발주처에서 편성한 안전관리비 요율이 낮다'(40.4%), '발주처에서 돈을 받은 원도급사에서 안전관리비를 적게 책정한다'(51.3%)는 응답이 다수였다. 돈이 부족할 땐 '개인안전보호구만 지급'(18.8%)하거나 '개인별로 필요한 항목만 선별해서 사용'(80.2%)했고,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경우(1%)도 일부 있었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도 심각한 상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30대 건설사 안전·보건관리자 4272명 중 62%인 2643명이 비정규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문제는 오랫동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2015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의뢰한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요율 및 사용기준 개선방안 연구‘에도 같은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연구에 따르면 설문 대상 425개사 중 원도급사 65%와 하도급사 61%가 산업안전관리비 요율을 높여야 한다고 답변했고, 하도급사 중 20%는 원도급사로부터 아예 산업안전보건비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은형 연구원은 "안전문제의 1차 근간은 공사비다. 돈을 주고도 사업주가 의무를 위반하면 강력히 처벌해도 되는데, 돈도 주지 않고 사고 나면 처벌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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