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청년 목수가 50여년 만에 업계 2위 건설그룹의 수장으로 우뚝 섰다. 대우건설 인수가 마무리되면서 중흥건설그룹은 건설사 2위, 재계 20위권으로 수직 상승했다.
경쟁이 치열한 건설업계에서 망치 하나로 시작한 그의 삶 곳곳에는 성실함과 결단력이 있었다.
열아홉 목수의 건설업 외길 인생
1943년 광주에서 태어난 정창선 회장은 스물도 되지 않는 나이에 현장직인 목수로 건설업에 발을 들였다.
그는 현장에서 알게 된 인연들과 의기투합해 1983년 중흥그룹의 전신인 금남주택을 세웠다. 이후 그룹 핵심인 중흥건설을 1989년 설립해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수도권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30여 개 주택·건설·토목업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덩치를 키웠다.
주택 시장에서는 2001년 전남 순천 금당지구에 '중흥S-클래스' 분양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엔 대형 건설사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던 지역의 땅을 싸게 대량으로 매입한 뒤 아파트를 분양해 파는 방식으로 사세를 급격하게 키웠다.
중흥건설은 2010년 시공능력평가에서 104위를 기록하며 중소 건설사로 올라선 후 2011년에는 94위로 100대 건설사에 진입했다.
세종 아파트 1/3은 중흥건설이···중견 건설사 반열
세종특별자치시 공공택지사업은 중흥건설을 중견 건설사 반열에 올려 놓는 계기가 됐다. 세종시 개발 과정에서 많은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물고 포기할 때 중흥그룹은 과감하게 전체 주택용지의 3분의1을 매입했다.
중흥건설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종시에 단일 브랜드로는 최대 규모인 12개 단지, 1만3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했는데 모든 물량이 분양에 성공하며 기회를 잡았다.
2012~2013년에는 2년 연속 전국 아파트 공급 실적 3위를 기록할 정도로 활발히 주택사업을 펼쳤다. 그 결과 2014년 52위, 2015년 39위, 2016년 33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세종시가 행정복합중심도시로서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덕에 수요가 몰린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대기업 집단인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철저한 자금 관리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정 회장은 평소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신중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 시장이 크고 작은 부침을 겪는 와중에도 중흥이 성장을 이어온 바탕이다.
그의 경영철학 역시 △비(非)업무용 자산 불매 △보증 금지 △적자 프로젝트 수주 금지 등 '3불 원칙'이다. 업무용이 아닌 땅은 사지 않고, 보증은 서지 않으며,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금 관리에도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자금 관리를 주먹구구로 해서 무너진 기업을 많이 봤다"며 "우리는 사업을 계획하고 자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금 계획에 따라 사업 계획을 세운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의 책상 위엔 여전히 회사의 현금흐름표가 붙어 있다. 36개월 자금 계획을 미리 짜고 3개월마다 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신 경영은 현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가 현장을 알아야만 품질로 승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현장에서 실무진과 업무를 공유하고, 즉석에서 빠르게 판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철저한 자금 관리가 대형 건설사인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중흥건설 측의 구체적인 자금조달계획서를 호평하면서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매각대금, 거래의 신속·확실성, 대우건설의 성장과 안정적 경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우건설 인수에 과감한 베팅···강한 인수 의지
재무적 관점에서는 보수적인 그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등장한 것은 그만큼 대우건설 인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무리한 투자보다는 안정적 수익과 꼼꼼한 자금 관리를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고려할 때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중흥이 시장의 예상가보다 많은 인수가를 제시한 것은 다소 과감한 베팅인 셈이다.
그가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대우건설을 호시탐탐 노려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기자간담회에서 "3년 내에 4조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1조원 이상을 들여 대기업 한 곳을 인수한 뒤 나머지 3조원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해야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대기업 인수 구상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인수할 대기업을 생각하고 있다"며 "경험이 없는 제조업보다는 대우 등 해외사업을 많이 하는 대기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대우건설 인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우건설 인수 불안 불식시키기 위해 '재등판'
2013년 장남인 정원주 중흥건설 사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준 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시기 역시 대우건설 인수설이 돌면서다.
대우건설 노조는 고용 불안, 매각 과정 중 배임 문제 등을 제기했다. 대우건설 직원들도 중흥그룹에 편입되면 대외 경쟁력 및 주택 브랜드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우건설은 시공능력평가 5위의 대형 건설사다. 전체 수주 잔액 39조원 가운데 해외사업이 8조원에 달할 정도로 해외사업에 강하다.
반면 중흥건설그룹은 시공능력평가 기준 중흥토건이 15위, 중흥건설은 35위다.
조직 안팎에서 통합에 대한 불안한 전망을 내놓자 정창선 회장은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전이 본격화하던 지난 7월 광주상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우건설은 대우건설대로, 중흥건설은 중흥건설대로 잘 성장시키겠다"며 "대우건설에서 이익을 남겨 중흥으로 가져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우건설의 주택 브랜드 '푸르지오'와 중흥건설의 '중흥S-클래스' 합병설에 대해서도 "두 회사가 가진 장점을 살려 각 회사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일축했다.
회사 인수에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는 대우건설 노조와 관련해서는 "노조에서 오너(본인)의 경영 방침을 몰라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오너의 경영철학을 이해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방 건설사 한계 이기고 톱2 건설사로
대우건설 인수가 마무리되면서 중흥그룹은 '지방 건설사'라는 한계를 딛고 '전국구 건설사'로 도약하게 됐다.
중흥토건(2조585억원)과 중흥건설(1조1302억원), 대우건설(8조7290억원)의 시공능력평가액을 합산(11조9177억원)하면 삼성물산(22조5640억원)에 이어 단숨에 2위까지 치고 올라간다.
재계 순위도 수직 상승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9조2070억원으로 재계 47위 수준이다. 자산총액 9조8470억원인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19조540억원으로 미래에셋(19조3330억원)에 이어 21위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건설이 주력인 기업집단 가운데서는 부영그룹과 DL그룹만 중흥건설그룹 앞 순위에 놓이게 된다. "사업을 하는 동안 목표로 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이 없다"는 정 회장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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