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을 끝내고 약간의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번아웃 상태였던 거죠.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안수현 제작 PD가 '데뷔작을 다시 찍을 수 있다면 뭘 만들어보고 싶냐?'고 묻더군요. 고민 끝에 '외계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니 안 PD가 '그럼 그걸 하자'더군요. '아직 청춘이니 해보자'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고 '외계+인'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어요."
최 감독은 어린 시절 극장에서 경험한 충격과 감동을 떠올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1979),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빽 투 더 퓨쳐'(1985)처럼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 작품을 떠올리며 '외계+인' 작업을 시작했다.
"'빽 투 더 퓨쳐' '에이리언'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시각적으로도 놀랍지만, 그 영화의 상상력이 저를 충격에 빠트렸죠. 한국 영화에는 없는 세계였으니까요. '언젠가 내가 영화감독이 된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외계+인'은 고려 말 소문 속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외계인이 출몰하는 2022년 현재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그린다.
"어릴 때부터 외계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외계인들이 지구에 숨어 있다면 어떻게 지낼까? 지구인을 피해 숨어 있다면 어디가 가장 안전할까?' 생각 끝에 '인간 몸속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상상은 '인간 몸은 감옥이 아닐까?'로 이어졌어요. 어린 시절 상상이 영화로 확장된 거죠."
최동훈 감독이 떠올린 시각적 이미지는 두 가지였다. 서울 상공에 외계 비행체가 나타나고 그 안에서 로봇이 등장하는 것과 고려 시대 주막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가 술을 마시는 이미지였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것보다는 번화한 거리를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죠. 외계인에 대한 영화는 정말 많잖아요.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 영화는 '왜 외계인이 지구로 올까'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여러 생각을 하다가 '형벌'이 퍼뜩 떠오르더라고요. 외계인이 인간 몸에 죄수를 가둔다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걸 스토리화한 거죠."
상상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그걸 '구현'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최 감독에게 "상상력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두려움"이라고 솔직히 답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두려움에서 출발했지만 이 작품을 두려워하지는 말자'고 되뇌었어요. 스스로 '넌 정말 이걸 보고 싶니?' 자문하기도 했죠. '너무 익숙해도 안 되고, 너무 이상해도 안 된다'는 기준을 바탕으로 내 상상력과 대중이 품고 있을 법한 상상력의 크기에 대해서도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의견도 많이 물어봤고요. 그 과정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도둑들' '암살'에 이르기까지 최동훈 감독은 주연 배우가 여럿 등장하는 '멀티캐스트'를 선호해왔다. '외계+인' 역시 마찬가지다. 류준열, 김태리, 김우빈, 김의성, 염정아, 조우진 등 많은 배우가 참여했다.
"데뷔작('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를 쓰면서 '5명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당시만 해도 5명이 주인공인 영화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게 꼭 제가 취해야 할 자세 같더군요. 많은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쓰는 게 어렵지만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어요. '외계+인'은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그들의 입장이 겹치는 게 좋았어요.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으니까요."
최동훈 감독은 애초 류준열과 김우빈 캐스팅을 염두에 두었다. '외계+인'은 '무륵'과 '가드' 이야기로 열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우빈씨와는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하려는 의지가 있었어요. '뭐가 되었든 함께해 보자'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죠. 류준열씨는 다른 영화 뒤풀이에서 만났는데 계속 눈이 가더라고요. 말투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어요. '무륵'을 만들면서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눈만 뜨면 즐거운 캐릭터'로 설정했고 류준열씨가 떠올랐죠."
김태리는 '타짜' 김혜수, '암살' 전지현에 이어 총기를 사용한다. 최동훈 감독은 "총을 쏘는 여자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여성 캐릭터에게 총을 쥐여 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여성 캐릭터가 총을 쏠 때면 어마어마한 쾌감과 해방감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사명감이나 강인함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선호하는데, 그것과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적 시선으로 (총기는) 육체적인 능력보다 정신적 능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니까요."
일부 관객들은 '외계+인'을 보며 그의 전작인 '전우치'를 떠올렸다. 한국 도술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진 그는 이미 '전우치'에서 도사와 도술에 관해 소개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는 전우치가 쓱 지나가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의견을 반영해 '전우치'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어요. '도사는 바람을 다스리고,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며···.' 그러나 '외계+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요. 그 장면으로 '무륵'과 '전우치'의 차이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이 '전우치'를 연상하면 오히려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외계+인'은 1부 순제작비만 300억원 넘게 투입된 대작이다. 1·2부를 동시에 촬영했고 2부는 2023년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 중이다.
"성적에 관한 부담감도 컸죠. 예산을 타내기도 어렵고 또 받은 만큼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적인 부분이니까요. 그러나 영화를 찍을 때는 그런 현실적인 부담보다 이 영화를 잘 구현해내는 데 집중하려고 했어요. 시사회를 마치고 개봉까지 한 시점에서는 '흘러가는 대로 맡겨야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1부와 2부 감정선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결도 다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만드는 영화들은 범죄 장르나 주인공이 모험하며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외계+인'도 마찬가지예요. 미지에서 온 존재가 지구에 사는 인간을 우연히 만나고 연대감을 느끼기도 하고 운명적으로 얽혀가죠. 1부는 만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2부는 몇 가지 미스터리가 풀리며 이들이 일을 해결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최동훈 감독은 야심 차게 '외계+인' 1부를 공개하고 현재 2부 후반 작업 중이다.
"같이 보여 드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은 2부 편집이 완성되기 직전입니다. '외계+인' 외에도 밑그림을 그려둔 시나리오가 몇 편 있는데 '외계+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서 아직 그 작품들에 관해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제게 또 다른 도전이 될 거라고 귀띔해드릴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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