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은행 분야에 이어 아파트 유지보수, 주류 등 민생 밀접 분야에 대한 전방위적인 불공정 점검에 나선다. 연초부터 물가가 불안한 양상을 보이면서 나선 조치인데 경쟁당국이 사실상 '물가당국'으로 변질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달 27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은행권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금융·통신 분야 경쟁시스템 실효화 방안'을 보고 받고 "국민의 과도한 부담을 유발하는 과점 체제의 지대추구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확실히 강구하라"고 지시한 지 나흘 만이다.
전기·가스 요금이 오른 영향으로 '난방비 대란'이 발생하자 이달엔 관계부처와 함께 아파트 유지·보수 업체 선정에서의 입찰 담합이 있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아파트 관리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을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주류 가격이 들썩이자 이번에도 공정위가 움직였다. 기획재정부·국세청은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는데 공정위 차원에서 주류 생산·유통·판매 등 과정에서 형성된 독과점 구조가 주류 가격 인상을 쉽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1월 발표한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과제'에서 민생 분야를 3대 주요 감시 분야 중 하나로 꼽으며 올 초부터 이같은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민생과 직결되는 에너지, 가정용품, 통신장비, 아파트 유지보수 등에 대한 담합행위를 발견할 때 엄정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공정위가 전방위 조사에 나서면 결과와 관계 없이 업계에는 큰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제로 가격 인상을 계획했던 일부 유통업체들은 이를 철회하거나 선제적으로 인상계획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 저승사자'인 공정위가 민생과 밀접한 현안까지 일일이 챙기는 것은 시장왜곡을 불러일으킨다는 부정적 견해를 내비친다. 독과점적 시장 구조를 살피고 경쟁을 촉진하는 일은 공정위의 업무이지만 지나치게 영세한 부분까지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다.
공정위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 지시 며칠 만에 현장조사에 착수하는 등 조사 자체가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정위를 내세워 전방위 실태조사를 진행하면 담당 업체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고강도 압박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가격인상 요인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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