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자의 못(horseshoe nail). 못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서양 속담이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이런 격언을 남기기도 했다. “못(nail)을 잃으면 편자(horseshoe)를 잃어버리고, 편자를 잃으면 말을 잃는다. 말이 없으면 기수를 잃는다.” 편자는 말발굽에 대는 U자형 쇠붙이를 가리키고, 말 전용 신발이라고 할 수 있다. 편자를 말발굽에 부착하기 위해 못을 박는데, 못 하나를 잃으면 큰 재난이 초래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를 ‘21세기 편자의 못’에 비유했다. 사실, 21세기 지금 반도체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난감, 가전제품,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 군사 무기,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반도체를 현대사회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산업의 3중고
반도체 산업이 3가지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첫째, 반도체 실적 악화다. 글로벌 경기는 2022년부터 둔화하기 시작해 2023년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반도체는 완제품이 아니고, 부품이다. 내구재나 생산장비 등에 들어가는 부품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반도체 실적은 경기 순환 사이클을 선행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즉, 경기가 나빠질 것을 먼저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D램 시장의 45%, 낸드플래시의 34%를 점유한 삼성전자 실적은 실적 악화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삼성전자 매출액은 2022년 1분기 약 77조8000억원을 기록하고 점차 감소해 2023년 1분기 63조원(잠정치)을 기록했다. 반도체 수요 둔화에도 공급량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고 영업이익은 매출 감소 속도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2023년 1분기 영업이익은 잠정 약 6000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인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이다.
둘째, 반도체 재고 누증이다. 반도체 재고 증가세가 2023년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23년 1월과 2월 반도체 재고 증감률은 각각 39.5%, 33.5%로 2022년 하반기에 비해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제조업에서 재고율이 2023년 1월과 2월 120.8%, 120.1%로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는 현상도 상당 부분 반도체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월 반도체 재고율은 265.7%로 1997년 이후 최고치다. 한동안 조업을 쉬어도 될 정도다.
모든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미분양 주택이 쌓이면 주택 가격은 내려가는 법이고 OPEC+가 원유 감산 합의를 이행하면 국제유가가 오르는 법이다. 삼성전자 DS 부문에 재고 자산 부담이 29조원 규모로 쌓였다. 건전한 재고 수준이 5주치인데 D램 재고는 21주치나 쌓였다. ‘재고 평가 손실’이 불어나 삼성전자 가치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반도체 재고가 쌓이면 반도체 가격이 내려간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중국 경기 회복이 미진한 탓이다. 삼성전자 매출 감소 폭보다 영업이익 감소 폭이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미분양 주택이 쌓이면 주택 가격은 내려가는 법이고 OPEC+가 원유 감산 합의를 이행하면 국제유가가 오르는 법이다. 삼성전자 DS 부문에 재고 자산 부담이 29조원 규모로 쌓였다. 건전한 재고 수준이 5주치인데 D램 재고는 21주치나 쌓였다. ‘재고 평가 손실’이 불어나 삼성전자 가치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반도체 재고가 쌓이면 반도체 가격이 내려간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중국 경기 회복이 미진한 탓이다. 삼성전자 매출 감소 폭보다 영업이익 감소 폭이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반도체 지원법의 후폭풍이다. 가뜩이나 경기적인 요인으로 반도체 산업이 부진한데 미·중 갈등과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업계와 정부에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공정을 미국에 두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겠다는 내용의 이 법은 상당한 독소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초과이익공유’라는 조항은 기업의 경영·재무정보를 제공해야만 하는 사항이 되기 때문에 경영 주권을 흔들고 사업 기밀 보안에 위협을 줄 수 있다. ‘반도체 시설 접근권’을 부여해야 하는 조항도 기술 격차가 최우선인 기업에 기술 탈취를 야기하는 위협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사내에는 ‘성과보다 보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을 만큼 보안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미국 국방 장비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당근 뒤에 기술 보안을 위협하는 채찍이 마련되어 있다.
반도체 지원법이 주는 위협은 무엇보다 ‘중국 투자 확대 제한’이라는 조건에 있다. 초과이익공유와 반도체 시설 접근권은 어쩌면 조심하면 될 일이라지만 미래의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함을 내포하는 이 조항은 사실상 독 그 자체다. 보조금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 내 생산능력을 늘리지 못한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40%, 낸드플래시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지속적인 투자와 업그레이드, 개발, 증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중국 시장을 놓치는 것이 뻔하다.
반도체 산업, 바닥인가 바닥 아닌가?
2023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진전되면서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세계 반도체 시장이 2022년 약 5801억 달러에서 2023년 약 5566억 달러 규모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리세션이 얼마나 장기화할지에 따라서 반도체 수요 침체 기간이 결정될 수 있다. IMF, OECD,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나 주요 연구기관들이 2023년 경기 침체 국면이 지나면 2024년 완만하게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2024년 경기 반등에 앞서 2023년 반도체 시장 여건은 상반기 중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부터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8.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사이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수급 상황이다. 2020~2021년에는 반도체 공급이 부족했고 2022~2023년에는 과잉공급이었다. 2023년 4월 7일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충분한 제품 위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생산량 하향 조정“할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SK하이닉스나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다. 2023년 하반기 들어서는 수요가 회복되고, 재고는 소진되며, 공급이 적정하게 조절되면서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전략
주력 산업을 지키기 위한 전략은 첫째도 기술력, 둘째도 기술력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적 격차를 벌려 놓아야 한다. 정부가 계획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활용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 우주항공 등에 활용될 미래형 첨단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반도체 밸류체인의 전후방 산업에 대한 진출도 요구된다. 반도체 설계, 반도체 소재·장비 등과 같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들을 용인 클러스터로 유치하고 적극적인 기술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
반도체 사이클을 관리해야 한다. 시장 흐름을 읽고 반도체 수급 조절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2020~2021년에는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대란을 겪었고, 2022~2023년에는 과잉공급에 따른 역풍을 경험했다. 반도체는 한국 주력 산업인 만큼 전담 수요예측기구를 설치하는 등 수급을 관리하는 보다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인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탈세계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외교·안보적으로는 미국과 동맹국으로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더욱 의존적인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문제를 마치 수학 공식처럼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국제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과제다. 미국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중국과 경제적 교류를 유지하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필요하다. 외교는 분명 수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어려운 요구일지 모르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다.
반도체 지원법이 주는 위협은 무엇보다 ‘중국 투자 확대 제한’이라는 조건에 있다. 초과이익공유와 반도체 시설 접근권은 어쩌면 조심하면 될 일이라지만 미래의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함을 내포하는 이 조항은 사실상 독 그 자체다. 보조금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 내 생산능력을 늘리지 못한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40%, 낸드플래시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지속적인 투자와 업그레이드, 개발, 증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중국 시장을 놓치는 것이 뻔하다.
반도체 산업, 바닥인가 바닥 아닌가?
2023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진전되면서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세계 반도체 시장이 2022년 약 5801억 달러에서 2023년 약 5566억 달러 규모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리세션이 얼마나 장기화할지에 따라서 반도체 수요 침체 기간이 결정될 수 있다. IMF, OECD,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나 주요 연구기관들이 2023년 경기 침체 국면이 지나면 2024년 완만하게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2024년 경기 반등에 앞서 2023년 반도체 시장 여건은 상반기 중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부터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8.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사이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수급 상황이다. 2020~2021년에는 반도체 공급이 부족했고 2022~2023년에는 과잉공급이었다. 2023년 4월 7일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충분한 제품 위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생산량 하향 조정“할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SK하이닉스나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다. 2023년 하반기 들어서는 수요가 회복되고, 재고는 소진되며, 공급이 적정하게 조절되면서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전략
주력 산업을 지키기 위한 전략은 첫째도 기술력, 둘째도 기술력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적 격차를 벌려 놓아야 한다. 정부가 계획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활용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 우주항공 등에 활용될 미래형 첨단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반도체 밸류체인의 전후방 산업에 대한 진출도 요구된다. 반도체 설계, 반도체 소재·장비 등과 같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들을 용인 클러스터로 유치하고 적극적인 기술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
반도체 사이클을 관리해야 한다. 시장 흐름을 읽고 반도체 수급 조절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2020~2021년에는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대란을 겪었고, 2022~2023년에는 과잉공급에 따른 역풍을 경험했다. 반도체는 한국 주력 산업인 만큼 전담 수요예측기구를 설치하는 등 수급을 관리하는 보다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인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탈세계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외교·안보적으로는 미국과 동맹국으로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더욱 의존적인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문제를 마치 수학 공식처럼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국제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과제다. 미국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중국과 경제적 교류를 유지하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필요하다. 외교는 분명 수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어려운 요구일지 모르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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