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이초등학교 새내기 교사 죽음이 교육 현장에 던지는 교훈은 간단치 않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육 현장에서는 공교육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했다. 하지만 입 밖에 내기를 꺼렸다.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부조리가 우리 교육현장에 일상화된 지 오래다. 교직사회에서 영리한 처신은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섣불리 나섰다 봉변당하기 때문이다. 학생 반발은 물론이고 학부모 갑질 후폭풍을 각오하지 않는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이러다보니 보신주의는 만연됐고 참스승 만나기란 드문 일이 됐다. 어쩌면 서이초 교사 죽음은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동안 빚어진 참사다.
초등학교 A교사는 ‘교실 붕괴’라는 말로 교육 현장을 압축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는 교사의 손발을 묶었다. 일선 현장에서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고 폭행하는 건 드물지 않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모멸감과 실추된 권위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이어 “생활지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학부모 항의를 각오해야 하며, 학생인권센터는 해당 교사를 죄인 취급한다. 이런 풍토에서 생활지도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A교사는 이번 기회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아동학대방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동학대방지법을 손질하지 않는 한 보신주의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책임을 지기 싫어 전북지역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40%를 기간제 교사가 맡고 있는 현실은 이를 방증한다.
지난 주말 아침, 서이초등학교에 다녀왔다. 흰색 조화 무더기가 늘어선 학교 앞은 숙연했다. 텅 빈 운동장과 따가운 햇볕 아래 늘어선 조화 행렬과 국화 향기, 빼곡한 포스트잇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휴일 이른 아침임에도 학교는 술렁였다. 검은색 옷차림, 그리고 손마다 꽃송이가 들려 있다. 꽃을 놓고 고인을 위로하는 포스트잇 사이로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현직 교사로 보였다. 이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화와 조문객 행렬, 포스트잇은 그동안 교육현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됐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침묵했던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 장관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간담회에서 “교육청과 합동조사단을 꾸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대응하겠다”며 “시·도 교육감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3000건 넘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발생했는데 침해 유형은 다변화하고, 갈수록 심각하다. 특히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당한 칭찬과 격려가 차별로 인식되고, 사생활 자유를 지나치게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교사 폭행이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교육부가 공개한 교권 침해 사례는 상식을 뛰어넘는다. 일기쓰기를 지도하면 사생활 침해라고 항의하고, 또 쉬는 시간에 숙제를 마치도록 지시했다 정서적 폭력에 시달렸다는 민원을 받기도 했다. 교실에서 잡담하는 학생을 제지해 아동학대로 신고 된 사례도 있다. 서이초에 나붙은 포스트잇은 참담한 현실을 반영한다. “오늘도 학부모 민원 전화 받으며 선생님 생각에 마음 저렸습니다. 이 나이에도 가슴이, 손이 떨리는데 여린 신규 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지옥이네요.”, “저도 이번 학기 학부모에게 상욕 듣고 위협받으며 많이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생전에 연대하고 목소리 높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11년 전, 몇몇 학부모에게 괴롭힘과 비난, 조롱을 받았습니다. 아파트 22층에서 뛰어 내릴까, 아침 출근길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직서를 내고 막막해 참 많이 울었습니다.”, “3년차 때 악성 민원으로 1년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이 정도라면 교실 붕괴라는 자조 섞인 한숨이 과해보이지 않는다. 우선은 아동학대방지법을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서이초 교사 죽음이 학생 VS 교사 대결구도로 가서는 안 되지만 상식에 부합한 방향으로 정비하는 건 바람직하다. 교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지도할 때 교권 확립과 공교육 정상화, 대한민국 미래가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 처음 제정된 뒤 2012년 서울과 광주, 2013년 전북, 2020년 충남·제주 등 6곳에서 시행 중이다. 교실 붕괴 책임을 학생인권조례에 전적으로 떠넘겨서도 안 되지만 상식선에서 손질은 필요하다. 교원 교육활동을 존중하고,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상·벌점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학습 및 생활지도에 필요한 최소한 수단을 부여하는 건 당연하다.
이와 함께 단체 야외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단체 야외활동은 사회성을 기르고 인성발달에 도움 되는 교육 활동이다. 하지만 스카우트와 아람단을 비롯한 단체 야외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단체 야외활동 교사에 대한 가점을 폐지하고 학생생활기록부 기재를 금지하면서 유인책이 사라진 때문이다. 오는 8월 1~12일까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열린다. 세계 160여개국 청소년들과 교류하는 흔치 않은 기회임에도 국내 참가자는 저조하다. 통상 개최국은 전체 참가자의 20%를 유지해왔으나 국내 참가자는 3800여 명에 그쳤다. 대회조직위가 참가 자격을 완화하고 전북교육청이 참가비를 지원(1인당 150만원)하는 조례까지 제정했지만 애초 목표했던 5000명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권혁 스카우트 전북연맹장은 “지도 교사들은 주말을 반납한 채 단체 야외활동을 지도한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마땅함에도 인사 고과에서 배제되고, 학생들 또한 야외활동 경험을 인정받지 못해 단체 활동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단체 야외활동을 통해 상대와 소통, 존중, 배려를 배울 수 있기에 일상화된 학교폭력을 방지하는 데 단체 야외활동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잼버리 대회 성공 개최 못지않은 과제는 단체 야외활동을 활성화하는 청소년정책 전환이다. 상식에 부합하는 아동학대방지법 개정과 단체 야외활동 활성화는 무너진 교실을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연대하고 공감하는 교육만이 또 다른 교사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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