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대전환기에 그는 경제학자로서 뿐 아니라 뛰어난 도덕 철학자로 인류 역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올해가 탄생 300주년으로 전 세계는 그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가 남긴 업적을 다시 짚어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의 소도시 커콜디(Kircaldy)에서 태어났다. 그곳 세관에서 감사관을 역임했던 아버지는 애덤 스미스가 유아 세례 받기 약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와 사촌누이의 돌봄을 받으며 살았다. 어릴 때 몸이 허약하고 말까지 더듬어 얼뜨기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지만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범상치 않은 수재로 알려져 있다. 14세의 나이에 영국의 유서 깊은 명문 글래스고 대학교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7세 때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가 학풍이 맞지 않아 중퇴했다. 이후 그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가르치고 명예총장까지 지냈다. 그가 살던 시대 경제는 철학의 하위 분야로 취급되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스미스는 경제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출발하게 만들어낸 인물이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애덤 스미스에 관한 정보와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다. 평소 너무 겸손했던 그는 임종을 할 때 미발표된 자신의 많은 글(20권 분량)을 모두 불태웠기 때문이다. 그를 제대로 이해할 만한 소중한 정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아직도 애덤 스미스의 일부를 그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애덤 스미스가 남긴 2권의 책
1751년, 불과 28세의 나이에 모교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12년 동안 도덕 철학 강좌를 맡았다. 그의 생애 우리에게 남긴 책은 딱 두 권이다. 하나는 인간 본성 또는 윤리에 대한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학 분야로 둘다 출간되자마자 국제적인 명성을 안겼다.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산업혁명으로 근대 자본주의가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애덤 스미스는 두 저서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을 꿰뚫어 보며 자신이 그리던 이상적 가치를 세상에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술 시대 진입으로 지금은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 시기이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진단과 처방전을 내릴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스미스를 소환하고 있다. 그러나 마치 성경에 담겨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처럼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그가 출간한 두 권의 책 말고는 딱히 그를 심층 분석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주장이 모호해 역설적으로 후대 많은 학자들이 각기 다른 해석으로 그를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1759년, 스미스는 대학에서 가르친 강의 내용을 정리해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을 출간했다. 그의 나이 36세 때였다. 인간은 지나친 이기심과 탐욕을 내려놓고 사회적 존재로서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이 저서는 스미스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주었다. 유럽 전역에서 유명세를 탄 스미스는 교수직을 사임한다. 당시 유럽의 상류층 자제들은 세상을 돌며 견문을 익히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스미스는 찰스 타운젠트 공작의 양아들 햄리 스커트와 함께 그랜드 투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유럽의 쟁쟁한 사상가들과 만나 지식과 사고의 폭을 넓히면서 드문드문 작성한 견문록(sketching out notes)이 훗날 엄청난 화제가 된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의 시작이다.
파리에서 만난 프랑스 중농학파 거두이자 루이15세의 주치의 프랑수아 케네(1694~1774)는 스미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케네와의 만남에서 스미스는 사회는 한 인간의 육체와 같고 인간이 노동을 해야 식량과 원료를 얻게 되며 상품을 유통 시켜야 사회가 성장한다는 원리를 깨닫게 된다. 그는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근대 경제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부론' 집필에 들어간다. 1·2권 총 700페이지에 달하는 국부론은 10년간의 연구와 집필 끝에 나온 역작이다. '국부론'은 그의 생전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논쟁도 많았다. 후대에 자신의 저서에 대해 잘못된 해석과 불필요한 오해를 우려해 다른 미발표된 글들을 모두 불태우게 했다는 주장도 있다.
<국부론>이 출간된 1776년은 스코틀랜드 출신 발명가 제임스 와트(James Watt, 1973~1819)가 증기기관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던 해이기도 하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수세기 동안 중상주의(mercantilism)라는 경제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부의 원천이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 아니라 노동에 있다고 정의했다. "The property which every man has in his own labor, as it is the original foundation of all other property, so it is the most sacred and inviolable." (모든 사람의 고유한 노동력은 재산을 만드는 근본적인 기초다, 그래서 그것은 가장 신성하며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프랑스나 스페인을 제치고 세계적인 부국으로 등극했다. 자동화 도입으로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해졌다. 생산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물건을 팔 수 있는 더 넓은 시장이 필요했다.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교통망이 대폭 개선되고 금융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새로운 부유층이 탄생하고 노동 계급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스미스가 대학을 다니고 교수 생활을 했던 글래스고는 부유한 상인들이 세운 스코틀랜드 최대 무역항이자 조선과 해운의 중심지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담배와 사탕 등이 이곳을 통해 영국으로 들어왔다. 스미스는 이곳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자유 시장의 위력을 목격했다. 그는 이미 상당히 발전된 시장경제사회를 체험한 사람이다.
<국부론>의 제1장은 노동의 분업'(division of labor)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를 설명한다.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며 일반 대중은 과거 대주주나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고가의 공산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수송의 발전으로 하천과 연안을 낀 도시들을 중심으로 분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산과 유통의 변화뿐 아니라 애덤 스미스가 주목한 것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승자와 패자로 갈린 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것이다. 그는 '경제적 활동의 중심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우리가 빵이나 술 고기를 먹는 것은 가게주인들의 이웃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고 각자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이기심'이 모여 경제가 움직인다고 했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경쟁이 개인과 사회를 부유하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국부론>은 출간된 지 6개월 만에 초판 1000부가 동이 났고 그의 생전에만 5번의 개정판이 나왔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우리들에게 애덤 스미스 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먼저 떠오른다. 국부론에서 단 한번 등장한 표현이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우파 경제학자들이 자유시장 경제의 비유(metaphor)로 자주 사용한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조지 스티글러 등 신자유주의 사상의 시카고 경제학파들은 다른 해석을 한다.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자동적으로 효율성을 유지한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정부가 개입하여 가격을 통제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좌파적 성향의 학자들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의 우파 학자들이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자유 시장'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하던 시기 영국의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가 전 세계 무역의 50%를 차지했다. 인도 및 극동지역과의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국왕의 허가를 받아 조직된 동인도회사는 군대까지 갖춘 거대한 식민 기업이었다. 이와 같은 독과점을 배격하고 기업들이 서로 공정하게 경쟁하는 '자유 시장'을 스미스는 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좌파적 성향의 학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손'은 국가와 거대 기업의 결탁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원동력은 다름아닌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다.
<도덕감정론>은 스미스가 <국부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책이다. 국부론이 인간의 이기심을 다루었다면 이 저서는 공감(sympathy)이라는 도덕의 원천을 강조한다. 또 인간의 마음속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공정히 바라보는 '공명정대한 구경꾼' (the real and impartial spectator)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스미스는 '도덕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자유 시장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봤다. 결론적으로 스미스는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의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를 꿈꾸었다. 이를 위해 적절한 시장 규제와 윤리는 필수적 요소로 여겼다.
기술의 발전은 일상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에서 증기기관 같은 발명품이, 현대사회에서는 인터넷과 인공지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지 30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새로운 변곡점에 서있다. 소위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기술은 이제 소통방식에서부터 업무 방식, 전쟁을 치르는 방식, 국제정치까지 인간의 모든 삶을 바꾸고 있다. AI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AI가 인간을 대신해 복잡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AI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표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AI가 노동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인력을 대체하게 되면 실업 등 사회적 문제까지 심각해질 수 있다. AI라는 새로운 ‘인공의 손(artificial hand)’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난 6월 글래스고 대학에서 열린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행사에서 나온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의 연설은 AI 대전환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잘 진단하고 있다.
고피나스 부총재는 AI가 애덤 스미스 시대의 산업혁명만큼 파괴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AI의 '혁신에 대한 지원'(support for innovation)과 '규제 감독'(regulatory oversight)에 대한 균형을 조심스럽게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AI는 인간이 입력한 기존 데이터에 의존하므로 해당 데이터에 내재된 편견까지 복제할 수 있다. 특히 의료나 주요 인프라 등의 분야에서 인간이 AI에 통제권을 넘겨주면 그 위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해진다. 고나파스 부총재는 AI라는 새로운 게임에선 새로운 규칙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관점에서 AI의 의미를 진정으로 고려하려면 그의 첫 번째 저서 <도덕감정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미스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AI 혁명이 가져올 지각변동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아마도 그는 AI의 심장에 인간처럼 '공명정대한 구경꾼' (the real and impartial spectator)과 같은 칩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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