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토크]  "국가흥망 결정하는 건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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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입력 2024-04-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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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준 논설주간이 만난 사람 – 정운찬 전 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인터뷰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정운찬 전 국무총리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신문은 오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2009~2010년 제40대 대한민국 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77)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박승준 논설주간, 구동현 기자, 남궁진웅 기자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신림동에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정운찬 이사장은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 투표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므로 투표를 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라면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잘하면 좀 더 질서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거짓말하는 후보, 헛소리하는 후보에게 표를 안 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번 총선의 역사적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저는 지금 우리나라는 무질서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는 10일 제22대 총선 투표를 잘하건 못하건 무질서가 다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개선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각 정당 대표들 하는 걸 봤더니 진짜 무질서예요. 거짓말하고, 뻔뻔하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죄의식이 없고, 피의자를 넘어 범법자인 데다 아무런 개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후보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고, 짧은 지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아무리 잘 뽑아도 이 무질서가 질서로 금방 회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소 질서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크게는 안 바뀔 듯합니다. 각자가 투표를 잘하면 질서를 찾는 데 좀 도움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우리 주위에 지금 투표를 안 하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마당에 우리가 해야 할 거는 투표하는 거지요. 투표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누구나 유권자들은 다 가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좀 더 의식을 가지고 가자, 내 투표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 나라의 흥하고 망함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영어로는 'People have the government they deserve'라는 말이 있지요. 그럼 어떻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그 다섯 가지 부류 사람들한테는 찍지 말자는 것입니다." 

 
-최근 기고에서 “산업화의 성공이 민주화로 이어져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는 잘 이뤄지고 있는데 제도로서의 민주화와 의식의 민주화는 잘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릴 때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 박사한테 인격 형성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지목했지만 스코필드 박사는 '부정부패를 안고서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교육 혁신, 사회 혁신, 정치 혁신인데 정치 혁신은 아직 쉽게 이루기는 자신 없고, 부정부패를 없애는 게 중요한데 현재 부정부패가 너무 많아요.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속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너무 부만 추구하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한다, 애를 낳는다 이런 가치도 큰 가치인데, 결혼하고 애 낳고서는 내가 저축도 못하고 집도 못 살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조직이 다양해져야 합니다. 조직이 다양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부류의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어떤 조직이든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끼리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도 다양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들도 다양해서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걸 극복하려고 서울대 총장(2002~2006) 때 지역 균형 선발제를 했어요. 지역 균형하고 다음으로 계층 균형을 하고 싶었는데 지역 균형도 너무 힘들어서 계층 균형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다양한 사회 속에서 가치 추구의 다양성이 있어야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불균형 성장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와 계층 간 양극화를 조성했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양극화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겠습니까. 

"결국 양극화는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해서 제가 이익공유제 같은 것들을 말해 놓았습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 그다음에 정부 발주도 대기업을 통해서 중소기업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는 방식도 말해 놓았습니다. 중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을 키워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 혁신, 인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양극화는 진영 논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걸 꼭 하나 지적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데올로기 시대는 갔다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이데올로기가 필요합니까. 국익, 그중에서도 경제적 국익이 중심이 된 세상입니다. 개딸이건 태극기건 곤란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선택이 잘못 이뤄지면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런 주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에 세계 5대 경제 대국이었어요. 지금 굉장히 어려운 나라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오직 포퓰리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데 대해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포퓰리즘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포퓰리즘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어요. 표 얻는 데만 관심이 있지요. 과거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맛을 보더니 재미를 붙여서 '표를 얻어야지. 그래야 오래 앉아 있지' 해서 포퓰리즘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 전직 재정경제부 장관께서 쓴 책에서 “한국 경제는 정치가 망가뜨린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저는 거기에 대해 꼭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경제가 정말로 좋으면 정치가 발전할 수밖에 없지요. 정치가 진짜 좋으면 또 경제가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반대 논리도 있죠. 박정희 대통령 때 경제는 잘 됐는데 정치 가 잘 안 되지 않았나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짧게는 몰라도 길게 보면 정치하고 경제는 같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하는 것은 직업 공무원들이 자기방어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좋아한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1889~1959) 옥스퍼드대 교수가 있는데 '정치와 경제는 같이 간다'고 했어요. 어릴 때 읽은 책이라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저는 ‘한국 경제는 정치가 망가뜨린다’에 대해서는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 혁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 혁명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하겠습니까. 

"유권자 혁명이라는 건 유권자들이 표를 잘 찍어서 이 나라 좀 잘 만들자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이번에 아무리 잘 찍어도 질서 유지, 질서 회복 아니면 질서 창조는 잘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유권자 혁명이라는 말은 좀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유권자 개개인이 ‘거짓말하는 사람 찍지 말아야지’ ‘헛소리하는 사람 찍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투표하다 보면 지금보다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국가흥망 필부유책’인데 이렇게 한다고 나라가 이 방향으로 가고, 저렇게 한다고 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각 국민들이 조심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누가 정직한가, 누가 좀 무게가 있나, 누가 좀 자기 의견이 있나, 누가 헛소리 안 하나, 누가 죄의식이 좀 더 있나, 누가 사과를 할 줄 아는가 이런 걸 따져서 투표하면 도움은 확실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드신 의미와 현황을 소개해 주십시오. 

"‘동반성장’이라 하면 사회주의라고 그래서 섭섭한데, 저는 집이 어려워서 중학교 안 가고 취직할 뻔했어요. 6학년 때 여름 내 클래스 메이트의 부모가 우리 집에 와서 '너 공부 잘하는데 그래도 중학교 가야지 일류 중학교 가면 등록금 우리가 대준다'라고 했어요. 그분들이 합격자 발표 다음 날 저를 스코필드 박사한테 데리고 갔어요. 스코필드 박사가 중 1~3학년 때 등록금도 대주고 약간의 용돈도 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그분한테 성경도 배우고 인격 향상에도 큰 도움을 받았죠. 저는 우리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우리 키우면서 고생 무지무지하게 했어요. 어머니는 저보고 법대 가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며칠 후 김근태 선배를 만났어요. '근태형 저 법대 갑니다' 했더니 그 자리에서 ‘너 법대 안 맞는다’고 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사시 패스하면 판사, 검사, 변호사 할 테지만, 판사를 하면 칼날 같은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너 마음이 우유부단하잖아. 검사는 강압 수사를 가끔 해야 되는데 너 마음이 약하잖아. 그리고 변호사는 가끔 고객을 위해서 흑을 백이라고 그러고 백을 흑이라고 해야 되는데 너 거짓말 못하잖아'라고 하더군요. 그때가 1966년이에요. 그때 스코필드 박사 말씀이 '너희 나라 국력 신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쳐주는 학과가 첫번 째 조건이고 두 번째 조건은 지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성장은 되고 있지만 소득 격차, 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데도 한국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눈곱만치도 없어서 참 안타깝다. 그런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학과로 가라고 해서 경제학과로 가게 된 거예요. 나중에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 할 때 이명박 대통령한테 가서 '중견 기업인이 이민 가겠다니 중소기업이 오죽하겠습니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 파탄 납니다' 했더니 청와대에서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2010년에 발족했죠. 대통령이 만들어 놓았지만 측근들이 전혀 협조를 안 해서 위원장을 그만두고 한 2개월 놀다가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서 이제 12년 됐습니다." 

 
정운찬 전 총리 프로필  

△1947년 출생 △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제23대 총장 △대한민국 제40대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제22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  


=정리 구동현 기자 / 사진=남궁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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