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코로나 시국이 한창이던 2021년 증권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도화선이 됐다.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수수료 수익이 급증하는 등 증권사에는 코로나가 우연히 가져다 준 호시절인 셈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은 코로나의 선물이 곧 독약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자본시장을 바라보며 리테일 중심으로 업황이 개선됐기 때문에 증권사 수익구조가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리테일이 약했던 몇몇 증권사는 사업 체질이 바뀌었다는 등 증권업 자체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당시 대다수 증권사 수장들은 실적 개선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겠다는 증권사 오너, 전문경영인(CEO)들의 선구안은 3년여가 흐른 뒤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흐지부지 되거나 사업상 오판(誤判)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기롭게 사업 다각화에 나선 증권사들은 우선 자기자본을 확충했다. 금융투자업 특성상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면 자기자본 규모가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이라도 자기자본에 따라 사업 범위가 달라진다. 그러나 무작정 사업 범위를 넓히거나 무리한 영업활동을 한 일부 증권사들은 존폐 위기까지 갔다. 증권사 매물이 나왔다는 흉흉한 소문도 그때부터 급격히 퍼졌다.
이 같은 증권사의 위기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시작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리테일 환경은 좋아졌지만 고수익을 가져다 주는 부동산 중심의 기업금융(IB) 업황은 악화된 것이다.
시발점은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레고랜드 사태)이었다. 재무적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이후 부동산 업황까지 꺾이면서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최근에도 부동산 PF 위기론이 증권업을 짓누르는 형국이다.
IB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A증권사에 다니는 직원에 따르면 최근 진행했던 PF 딜이 중도에 무산되거나 시작부터 불발되는 사례가 잦아졌다고 한다. 투자를 하고, 자금을 회수한 후 수익까지 챙겨야 하는데 업황이 부진하다 보니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경로가 요원해졌다는 얘기다.
그사이 차액결제거래(CFD)를 악용한 주가조작 사태까지 터지면서 증권사 자체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금융당국은 증권사 수장을 대상으로 부동산 PF 관리와 주가조작 사태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현재 증권사들은 사업 다각화는커녕 리스크 관리를 위한 내부통제에 여념이 없다. 기업이 돈을 벌고, 성장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위기에 봉착한 증권업계가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은 김칫국보다 쓸개를 씹으며 견뎌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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