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올해 1분기 중에만 2조원을 상회하는 부실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했지만 같은 기간 부실채권은 3조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 속에 가계와 기업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은행들의 공격적인 상각·매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실채권이 쌓이고 있는 모습이다. 부실채권이 많을수록 이익을 떼 충당금을 쌓아둬야 하는 만큼 수익성이 악화될까 은행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은 지난 1분기에 부실채권 2조3000억원을 상각 또는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1조3000억원) 대비 76.9%(1조원) 늘어난 규모다. 2022년 1분기(9000억원)와 비교하면 상각·매각이 불과 2년 새 2.5배가량 급증했다.
부실채권 상각·매각은 금융기관이 채권 회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권은 여신을 장부에서 상각해 없애는 과정에서 그 손실을 미리 잡아뒀던 대손충당금으로 상쇄한다. 또한 담보를 보유한 대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매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은행권은 자산과 부실채권 규모가 줄면서 연체율이나 재무건전성 비율 등을 낮춘다.
문제는 차주들의 연체가 급속히 늘면서 은행들의 공격적인 상각·매각 대비 더 빠른 속도로 부실채권이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1분기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13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0조4000억원) 대비 3조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비율도 0.50%로, 전년 동기(0.41%) 대비 0.09%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권에선 고금리가 지속되며 가계와 기업의 자금난이 커진 영향으로 풀이하고 있다. 대출 연체율에서 이런 상황은 잘 드러난다. 실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은 0.32%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0.27%)는 물론 전 분기(0.29%)보다 해당 수치가 높아졌다. 특히 같은 기간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2년 12월(0.64%) 이후 1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은행권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부실채권이 많을수록 이익을 떼 충당금을 쌓아둬야 하는 만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지난 1분기 대손충당금 잔액은 27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조2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부실채권 상각·매각 등을 통해 건전성 지표 등을 개선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장부상 표면적 단기 처리 과정일 뿐"이라며 "수그러들지 않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우려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금리 등 곳곳에 불안요소가 산재해 충당금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금융권 일각에선 이같은 흐름이 저축은행권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축은행권도 부실채권 매각이 필요한 상황인데, 대부분 무담보 채권이어서 NPL(부실채권) 투자사들에 큰 매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NPL 투자사들은 금융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고 해당 채권을 추심하거나 재매각해 수익을 얻는 구조인데, 담보가 없어 추심과 재매각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은행권 부실채권은 선순위 우량담보부 채권이어서 NPL 투자사들이 상대적으로 해당 채권 매각을 선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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