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트럼프의 귀환, 55년 전 '닉슨 독트린'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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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입력 2024-07-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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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그간 후보 사퇴론으로 내홍을 겪던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주말 출마 포기 용단을 내림으로써 이제 트럼프의 귀환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가 귀환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각 분야별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트럼프 집권 2기는 분명히 집권 1기보다 더 과감하게 기존 질서를 뒤집는 정책을 집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2023년 3월 재선 캠페인을 시작한 트럼프는 정치집회에서 ‘지지자 여러분을 배신하고 여러분에게 해를 끼친 모든 사람을 응징하겠다. 딥 스테이트를 완전히 소탕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하였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 후보도 입에 담은 적 없던 거친 발언인데 이에 트럼프의 진심이 담겨 있기에 걱정스럽다.
 
트럼프는 개인적·정서적으로 닉슨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고 닉슨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의 밑바탕인 현실주의와 고립주의는 트럼프의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한다. 닉슨 대통령이 처했던 국내 정치적 환경이나 국제 정세가 앞으로 트럼프가 집권하게 되면 맞이할 상황과 유사하기에 트럼프는 닉슨의 정책노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집권에 대비해 ‘닉슨 독트린’의 의미와 그로 인한 영향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행보가 50여 년 전 ‘닉슨 독트린’의 기억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닉슨 독트린’은 1969년 7월 닉슨 대통령이 괌에서 발표한 미국 외교정책의 새로운 지침이다. 월남전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당시 닉슨은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방위 부담을 줄이려고 이 원칙을 발표하였다. 발표 기자 회견장에서 닉슨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미국은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에서 3번이나 싸워야 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출혈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하였다. 이 독트린은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 손에’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말은 ‘핵 공격 이외 공격에 대해서는 아시아 동맹국 자신이 방위 책임을 져야 하고 미국은 군사 및 경제적 원조만 제공함’을 의미한다. 이 독트린에 따라 닉슨은 주한 7사단 병력 2만명을 철수하고 또 2사단도 추가 철수하려 했으나 그의 탄핵으로 인해 중단된 바 있다. 닉슨은 가급적 동아시아에서 일어날 군사 충돌에 미군이 개입되는 것을 회피하려 하였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국민의 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특이한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가 재출마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재출마하여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는 남을 믿지 않는 성향으로 인해 소위 제도권에서 배척받던 인물이었고 결국 그는 탄핵을 당해 권력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는 상대방이 예측 못하는 비합리성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광인 이론(Mad Man Theory)’을 신봉하였다. 이를 보면 트럼프는 여러 면에서 닉슨과 닮은 점이 많다. 그리고 당시 미국 대학가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몸살을 앓았다. 지금도 장기화된 우크라이나전에다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하마스 소탕작전으로 인해 50년 만에 미국 대학가에서 반전 시위가 재현되었다는 점도 기시감(데자뷔)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닉슨은 당시 러시아 견제 목적으로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세기의 외교적 승부수’를 던져 국제질서를 새롭게 재편하였다. 트럼프는 현재 중국이란 더 강력한 경쟁자를 꺾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집권 1기부터 푸틴과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트럼프도 닉슨과 같이 강대국 간 게임의 판을 뒤집기 위해 동맹국이나 약소국들을 그 협상의 희생양으로 삼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런 트럼프가 집권하면 닉슨 독트린과 유사한 트럼프 독트린을 발표할지도 모른다.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후 당시 우리 온 나라가 전전긍긍했던 처지를 모면하려면 이런 역사의 변주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해나가야 한다. 트럼프식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은 이미 알려져 있고 우리에 대한 요구사항도 대략 짐작된다. 먼저 트럼프는 이미 "한국은 부유한 나라인데 한국을 방위하기 위하여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국 방위에 대해 거래적인 조치를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겠으나 이에 대한 우리의 비용 지불을 기대할 것이다. 즉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증가시키고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이에 대한 비용도 한국이 부담하라고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전술핵이나 벙커버스터와 같은 대북 공격용 무기를 개량하는 데 드는 비용도 우리가 분담하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중에도 주한미군 주둔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주한미군 감축 지시에 대해 당시 국방장관 등 참모들이 급한 일이 아니니 재선 후에 검토하자면서 간신히 말렸다는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그가 재선되면 이 문제를 본격 거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중국과 갈등이 더 고조되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는 하겠지만 그는 주한미군이 꼭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군 주둔에 드는 방위비용을 우리에게 더 많이 부담시키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더라도 그 역할은 대북 억지보다는 대중 견제에 더 집중토록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가정할 때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느냐는 닉슨 당시 박정희 정부의 대응 방안을 보면 그 개략적 방향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우선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주월 한국군 숫자를 조절하려는 카드를 사용하였다. 즉 미국의 세계전략에 필요한 일정 역할을 우리가 자임하여 철군을 막으려 한 것이다. 둘째, 남북한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즉 남북한 간 7·4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고위급 교류를 확대하였다. 셋째는 우리의 자주국방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때 우리의 방산산업의 기초가 놓이고 우리의 핵 개발 노력도 태동되었다. 넷째는 6·23 선언을 발표하며 우리와 주변 공산국가들 간 관계 개선을 위한 포석을 두었다.
 
앞으로 트럼프 독트린이 정말 나올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현실화하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에 미리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뒷날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귀환이 위기일지 기회일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대체적으로 그의 귀환은 국제질서의 충격적인 재편을 예고하고 있기에 위기요인이 많은 것으로 보고 국제사회는 긴장하며 그의 캠프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각국의 능력에 달려 있다. 트럼프의 특이한 성향을 역이용하여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역량이다. 닉슨 쇼크는 모르고 당했지만 트럼프 쇼크를 예상하고도 당하면 정말 변명할 여지도 없다. 한번 잘못하면 실수지만 계속 잘못하면 실력이 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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