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대한민국 '2등 국민'을 위한 미래 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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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4-07-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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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동의 구도심이 확연하게 활기를 잃어간다. 방학을 맞은 주말 오후에도 학생과 청년들이 거리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계절에 따라 각종 행사가 펼쳐지곤 하던 조그마한 광장에 맞닿은 거리의 모퉁이에는 1년째 상점들이 비어 있다. 거기에는 배스킨 라빈스, 투썸플레이스 그리고 올리브영 같은 인기 있는 상점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생기를 잃은 거리의 모습은 지방 소도시의 소멸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불가마 같은 날씨에 쇼핑하는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물론 시내를 벗어나 골마다 자리 잡은 마을의 모습은 일찌감치 시들어가서 이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면의 초등학교의 신입생 전원이 다문화가정 출신의 아동들이라고 합니다.” 수년 전 현직 초등교사에게서 전해 들은 이 말은 전반적인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인구 이탈에 따른 초·중등학교의 통합과 폐쇄는 진행되었고, 그 속도는 최근 들어 훨씬 빨라졌다.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전교생 60명 이하)을 적용하면, 현재 경상북도에서는 351곳이 문을 닫아야 한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대학교까지 개체 수를 줄이거나 대규모 학생 수 감축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리라 예상된다. 얼마 전 도시에서 가장 큰 병원에는 ‘27만 → 15만, 인구 44% 감소’라는 전광판이 번쩍거렸다. 불과 30년 만에 벌어진 인구 소멸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경고하였다. 물론 인근의 봉화, 영양, 청송 같은 군 단위로 가면 더욱 심각하다.

소도시의 출산율이 대도시 특히 서울보다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구 감소의 결정적인 원인은 청년이 도시를 떠나는 현상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도시를 살리는 길은 청년 이탈 방지에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인간의 삶의 조건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주하지 않고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의 조건은 무엇일까?

하나는 건강권의 보장이다. 필자에게는 매우 아픈 경험이 있다. 10여 년 전 학생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여러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응급실 의사는 대도시 후송을 결정했다. 가슴 졸이면서 후송차를 뒤따라 갔지만, 학생은 결국 후송 도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중소도시에서 영위하는 삶에서 필자가 느낀 최초의 회의적인 사건이었고, 나와 가족에게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교육권의 보장이다. 우리 국민에게 교육은 의무이자 희망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적 성공은 모든 부모의 열망이었고, 국가적 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앞서 말한 학교의 소멸은 사실상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현상이고, 국가적 쇠락의 징조라고 할 수 있다. 나고 자란 곳에서 교육을 받고 어디서나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시스템이 유지되어야 당연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평등한 수혜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불신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까지 다녔으면 됐지요”라면서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수도권으로 이주하던 어느 교수의 당당한 모습은 기본권으로서 교육이 지역 간 격차에 따라 크게 훼손되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다른 하나는 노동권의 보장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영위할 경제적 여유가 절대적인 삶의 기본조건이다. 필자가 사는 도시에는 산업단지는커녕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개인 경험에 따른 도시 주민의 직업 분포를 볼 때, 다수가 공공 분야와 의료 서비스 분야에 종사한다. 인구 대비 공무원과 교원의 비율이 상당히 높고, 크고 작은 병원에 종사하는 인력을 어디서나 자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대규모 산업단지가 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이 대체로 이런 모습을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소도시 대학의 재학생 중 다수가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을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고, 간호 계열의 학과들이 높은 입시 경쟁률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물론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 분야를 개척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1960~70년대 울산, 포항, 구미 등 대규모 산업도시 건설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산업화 사회로 발전하였듯이, 21세기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새로운 개념의 국가적인 산업 육성 전략에 따른 거대한 투자로 정보화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건강권, 교육권 그리고 노동권의 보장 없이 지방 도시의 소멸을 막을 수 없다! 여기에 하나를 보충하자면, 문화권의 보장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국민은 먹사니즘에 국운을 걸어야 하는 시기를 건너왔다. 이제 국가는 국민의 삶을 보살피는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한편,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진심을 보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는 유비쿼터스 사회,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과 기획을 시민에게 제공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책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 ‘지역에 있으면 따분해서 못살겠다’는 지역민의 푸념에 정부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문화사회의 정착에 달려 있다. 인구 감소의 시대에 이민자와 난민의 수용은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나, 노동력 확보의 차원에서나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고 본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결같이 다문화사회의 정착을 통해 경제성장과 복지사회를 이룬 경험을 공유했다. 독일의 라인강 기적은 터키를 비롯한 외국 노동자들의 수용 없이 불가능했고,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도 이런 맥락에서 독일에 정착한 사례이다.

단일 민족의 서사는 이제 효력을 다했다. 국가주의적 발전 전략을 넘어서 글로벌 차원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다문화사회의 연착륙은 절실하다. 적정 인구의 유지, 경제성장의 필요한 노동력 확보 및 열린 사회의 건강한 적응 능력 등 다문화사회는 미래 한국사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유지와 동아시아 번영의 공동체 형성에도 적잖이 기여할 것으로 상상한다.

오늘 국민은 삶에 지쳐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들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사회가 어떨지 혼돈 속에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은 ‘2등 국민’의 열패감을 안고 살아간다. 눈떠 보니 ‘2등 국민’으로 평가받는 지역 간 격차는 정치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 중 으뜸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배회하는 ‘국가균형발전’의 구호를 ‘2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실현하는 정치세력의 등장을 갈구한다. 미래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린 국가적 어젠다로 설정하여 강력하게 추진하는 세력 말이다. 그리하여 누구든 대한민국 어디 살든 기본 권리를 누리는 사회가 다음 세대에 실현되기를 염원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이미 근본적인 변화에 진입했다. 인구 감소에 따라 모든 방면에서 축소지향의 논리가 적용되는 사회로 진입했고, 산업구조의 재편과 기후위기의 따른 에너지 전환이 인류 사회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가리라 예상한다. 이런 변화 속에 우리는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 다음 세대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특히 대한민국의 ‘2등 국민’은 어떤 환경 속에서 살 것인가? 그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으로 현재까지 가장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망을 필자는 조국혁신당이 내건 ‘사회권 선진국’ 개념에서 단초를 발견한다.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돌봄권, 노동권, 환경권, 문화권, 디지털권 등 8대 기본권이 어떤 비전 아래서 어떤 정책으로 구현되어 국민을 설득할지 주목하는 바이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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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입니다. 지방도시도 아마 수 개의 중심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 인구가 100억을 향해 가는 데 무조건 인구를 유지하자라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모든 도시를 살리기는 어려우니 지금부터 지방도 수 개의 중심도시를 중심으로 모여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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