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가계 대출 문턱을 높여오다가 최근 실수요자에 대한 예외 규정 등을 마련한 데는 대출 규제로 인한 실수요자 피해와 함께 부동산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출 규제 등 시장 개입이 오히려 '똘똘한 한 채' 현상을 공고히 하면서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계 대출을 조이던 주요 시중은행들은 주택 신규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무주택 가구에만 허용하거나 가계대출 취급제한 예외 요건을 마련하는 등 실수요자 보호 조치를 내놓고 있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들을 두고 예견된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수요자들에게는 대출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것마저 묶어버리면 시장을 돌아가지 않게 하겠다는 얘기와 같다"고 비판했다.
이재국 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도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가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 정책 손질에 들어간 것"이라며 "결국 ‘선의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매매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시행한 대출 조이기가 오히려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져 갭투자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54%를 기록해 2022년 10월(54.7%)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자산 여력이 안 되거나 자산 규모보다 더 상급지로 이동하기를 원하는 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전세 자금을 이용한 주택 매입이 향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세 대출 규제가 단행되면서 주거 비(非) 선호 지역에서 가격 상승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고 지역 간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미국 IAU 교수)은 "규제가 주택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정부의 오만함 때문에 오히려 더 시장이 왜곡됐다"며 "대출 규제로 인해 서민들이 집을 사지 못하고 풍선효과만 발생했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도 "대출 규제를 하게 되면 수도권과 지방 간에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며 "서울과 같은 일부 지역에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하게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대출 규제 대신 장기적인 대책을 더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임대주택 등 임대주택 분양 전환을 통한 공급 확대와 지방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서울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결국 이런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공급밖에 없다. 공급이 되는 지역에서는 양극화 현상을 막을 수 있지만 서울처럼 공급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되는 지역에서는 양극화 현상 해소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서울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이유는 수도권에 서울 같은 인프라가 구축된 도시가 없기 때문"이라며 "서울 중심인 부동산 대책이 아닌 지방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대출 규제로 인한 실수요자 피해로 불거진 혼란을 직접 거론하며 사과했다. 이 원장은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국민이나 은행 창구 직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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