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현대판 실크로드와 중국인이 만드는 이탈리아 명품… "Made in Italy by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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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입력 2024-09-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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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환기 중국을 제대로 읽자] ①

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Made in Italy by Chinese.”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명해진 ‘명품 핸드백’ 크리스찬 디올 가방을 이탈리아에서 중국인들이 만들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지난 6월 10일 판결문을 통해 프랑스 브랜드 디올 가방 가운데에는 이탈리아 내 하청업체에서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 고발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밀라노 법원은 34쪽의 판결문을 통해 “이탈리아 내 하청업체들이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해서 디올 매장에서 2600유로(약 380만원)에 팔리는 핸드백을 원가 53유로(약 8만원)에 제작해서 넘겼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핸드백과 구두, 패션 의상 등 많은 이탈리아 명품들이 밀라노와 프라토(Prato)의 제조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이탈리아에 체류하고 있는 많은 중국인들의 손에서 제작되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 투스카니(Tuscany)주 최대 도시인 프라토는 19세기 들어 섬유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아 ‘이탈리안 맨체스터’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고대의 실크로드를 부활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를 2014년 공식 선포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프라토시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08년 9927명이던 중국인 합법 체류자 숫자는 13년 만인 2021년 12월 31일 기준 2만7829명으로 3배로 불어났다. 프라토시 전체 인구가 2024년 1월 1일 기준 19만8034명인 사실에 비추어보면 프라토시 중국인 거주자의 비율은 지난 10여 년 사이에 급격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들 프라토시의 중국인 거주자들은 주로 파리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던 원저우(溫州) 출신 중국인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원저우 출신 중국인은 지난 6월 18일에는 프로토 시내 화교호텔에서 원저우시 원청(文成) 현 동향회를 열었고, 이 동향회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에 거주하는 화교, 화인(華人) 대표를 포함한 7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현지 중국 인터넷 매체가 전했다. 이 모임에는 패션 명품 업체 페라가모 총재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프라토시 부시장 페데리카 팔랑가(Federica Palanga)도 참석했다. 현재 프로토 시내 7000여 개의 명품 생산 업체 가운데 5000여 개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핸드백과 구두, 패션 명품 의상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100개 업체들은 중국인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프라토 상공회의소에 등록되어 있다. 프라토시의 중국인들은 2019년 총선에서 2명의 시의원을 당선시켜 정치적 배경도 마련 중인 것으로 진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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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최대 차아나타운이 있는 밀라노 거리에서 지난 2월 10일 춘제(설날)에 중국인들이 용⊙⊙춤을 보여주고 있다/사진=바이두] 


프라토보다 먼저 1920년대부터 저장(浙江)성 원청현에서 출발한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밀라노에는 2011년에 중국인 숫자가 2만명을 넘겨 이탈리아 최대의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명품 패션 브랜드와 가방 등 생산에 종사하는 밀라노 거주 중국인들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바이 차이니즈(Made in Italy by Chinese)’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들 밀라노의 중국인은 밀라노의 중심가 비아 파올로 사피(Via Paolo Sarpi) 노변에 중국어 간판을 단 헤어 살롱과 패션 부티크, 실크와 가죽 스토어에 여행사와 약국, 안마소가 보이는 거리 모습을 형성해 놓았다. 중국 사람들이 ‘탕런제(唐人街)’로 부르는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관영 영어신문 차이나 데일리 유럽판 편집실까지 자리 잡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을 통해 이탈리아 진출을 강력히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탈리아가 과거 고대 실크로드의 서쪽 끝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실크는 중국 동쪽 장강(長江) 하구의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에서 생산되어 장안(長安·지금의 시안·西安)으로 옮겨져 실크로드를 타고 낙타에 실려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탈리아 로마까지 판로가 개척돼 있었다. 고대부터 로마 황제와 귀족들이 입던 옷은 장강 하구에서 생산된 비단이었고 비단은 중국 역대 왕조들의 최고 수출품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탈리아 진출에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이유는 이탈리아가 유럽국가로 G7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탈리아와 교류함으로써 G7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주세페 콘테(Giuseppe Conte) 총리와 정상회담하면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이탈리아는 고대 실크로드의 양쪽 끝에 위치해 있는 만큼 윈윈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대일로 협력으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천경지의(天經地義·천지의 대의)에 따라 양국 관계를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탈리아와의 특수한 관계를 활용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방에 양국 교역 강화를 위한 항구를 건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주세페 콘테 총리는 “시진핑 주석의 이번 로마 방문은 중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역사적인 기회를 잘 확보하기 위해 중국의 'One belt One road'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회담 후 두 나라 정상은 일대일로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양해 비망록을 작성했다. 두 나라 정상은 역사를 통해 중국이 유실한 중국 문화재 796건을 전시한 박람회에 참석했다. 시진핑 주석은 연설을 통해 “15세기에 이탈리아 모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실크로드를 넘어 중국과 유럽 문명의 교류 통로를 연 것은 중국과 이탈리아 우호의 교량을 건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4년 후인 2023년 12월 좌파 총리인 조지아 멜로니(Giorgia Melony)는 “이탈리아가 중국의 '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실수”라면서 일대일로 사업에서 탈퇴한다고 선포했다. 4년 전과는 달리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외교와 경제, 군사 분야에서 봉쇄정책을 전개하는데 G7 국가로서 자신들만 유럽에서 역행하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는 미국이 영국을 통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도록 가하는 압력 때문에 탈퇴한 것으로 진단됐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중국에 등을 돌린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탈퇴를 선언했던 멜로니 총리는 7개월 만인 지난 7월 29일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멜로니 총리는 중국과 이탈리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체결한 20주년 기념과 마르코 폴로 사망 700주년을 기념해서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과 마주 앉았다. 시진핑은 멜로니 총리에게 “중국과 이탈리아는 과거 실크로드의 양쪽 끝에 위치해서 동서 문명 교류와 인류사회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면서 “양국이 정세 변화가 심한 국제사회에서 실크로드 정신에 따라 협력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멜로니 총리는 “두 나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20주년과 마르코 폴로(1254~1324) 서거 700주년을 맞아 국제 정세가 심각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고 문명국 간에 협력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전기차 분야와 AI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시진핑과 멜로니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수립 20주년을 맞아 2027년까지 두 나라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계획’에 서명했다. 두 나라는 이 행동계획을 통해 금융과 과학기술, 기후변화 대처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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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쪽 장강 하류의 쑤저우와 항저우에서 생산된 비단이 실크로드를 통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거쳐 유럽에 공급되던 개념도 



지난 3월 이탈리아와 중국은 13세기 유럽에서 중국 대륙으로 처음 여행을 한 모험가 마르코 폴로 사망 7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를 공동 주최로 개최했다.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으로 1272년부터 1292년까지 20년간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중국에 관한 각종 문물을 소개했다. 베니스에서는 지난 8월에도 마르코 폴로 기념 전시회가 열려 마르코 폴로가 직접 필사체로 쓴 ‘동방견문록’을 전시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중국 여행기에서 쑤저우(蘇州)를 '동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소개했다.

이처럼 ‘실크로드 정신’을 강조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중국과 이탈리아는 프라토와 밀라노 등 이탈리아 명품 생산도시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민을 늘어나게 해서 'Made in Italy by Chinese', 중국인이 생산하는 이탈리아 명품 생산의 비중을 점점 높여 가는 추세를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전기자동차와 드론, 백색가전, 양자 컴퓨터, 우주산업 등에 이어 지구촌의 패션 명품 시장까지 생산 점유율을 높여 갈 태세다.
<로마·밀라노·베네치아=박승준 논설주간>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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