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종결자인가, 전쟁 유발자인가.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전 세계는 그가 '2개의 전쟁(우크라이나·가자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칼날을 겨냥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무역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11월 5일(이하 현지시간) 밤 대선 승리 연설에서 "나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들을 끝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미국 보수층 행사 아메리카페스트2024에서도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다. 나는 중동의 혼란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3차 세계대전을 방지할 것을 약속한다"며 "우리는 3차 세계대전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덧붙였다.
2개의 전쟁에 지쳐 있던 전 세계는 이 같은 트럼프의 약속에 희망을 품기 시작했고, 전쟁 당사국 정상들도 저마다 트럼프와의 친분을 내세워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로 집권 시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특사를 지명하고 전쟁 종식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따라서 올해 중 종전 혹은 휴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5년 말, 늦어지면 2026년에 종전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트럼프 2기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인 마이클 왈츠 연방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모두가 협상 테이블로 나오고 있다"며 "그의 압도적인 승리는 혼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냈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가 약속대로 종전 혹은 휴전 협상을 이끌어 낸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평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불투명하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전쟁 중단" 약속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제하의 기사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전쟁을 조사한 결과 평화 협상으로 중단된 전쟁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싸움"이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요인인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및 영토 문제 등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평화 협상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들에 방위비 인상을 촉구하면서 유럽에 새로운 리스크를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중동에서는 전후 가자지구 해결책이 부재한 상황이고, 최근 시리아 내전 종식으로 중동 정세에 변화가 생긴 가운데 새로운 변수가 튀어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는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다"면서도 "그가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미·중 2차 무역전쟁 발발하나
트럼프의 귀환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무역전쟁, 특히 대(對)중국 무역전쟁 재발 여부이다. 그는 2기 요직에 대중국 강경파 인사들을 기용하면서 1기 때 진행했던 무역전쟁을 재점화시킬 태세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마약 유입·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이유로 취임 당일 중국에 추가 관세에 더해 10% 관세를 더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각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60%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해 온 것에 더해 추가 관세 부과 의지까지 표명한 것이다.
중국 역시 이에 적극 반격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양측 간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은 이미 1기와 달리 갈륨·게르마늄 등 전략 자원 물자의 수출 통제, '중국판 블랙리스트'인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을 통한 미국 기업 제재, 농산물 관세 인상 등 반격 카드도 준비했다.
하지만 중국은 트럼프와 대화를 시도하며 관계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중국은 트럼프 1기에서 협상을 통해 빅딜을 이뤄낸 경험이 있고, 트럼프 역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하며 파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를 전폭 지지해 온 ‘친중 기업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이 트럼프 당선자와 협상할 때 쓸 수 있는 '와일드카드'다.
사실 무역전쟁 확전 가능성이 가시화하면 가뜩이나 난관에 빠진 중국 경제가 한층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은 '관세 인상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들어 중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1%, 2026년 성장률을 3.8%로 각각 낮춰 잡는 등 중국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관측했다.
새해 ‘5% 내외’ 성장률 달성을 목표로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이 수출 둔화 우려 속에 경제 업무의 최우선 과제를 내수 진작으로 삼고 소비 활성화와 투자 효율성 제고를 강조한 배경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오는 3월 열리는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최고 4%로 올리고 특별국채 발행 등의 부양책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차별 관세폭탄'이 미국 동맹국을 겨냥할 가능성도 큰 만큼 중국은 이를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과 경제 협력을 구축할 새로운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무비자 관광 대상국에 포함시키며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아울러 중국은 미국의 기술 제재를 자국 과학기술 자립을 실현하는 기회로도 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공급망 등 부문에서 미국과 어느 정도 분리된 데다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데도 매진해 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중 전쟁은 경제·기술 전쟁에 국한될 것이며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확전돼 신냉전을 초래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학원 명예원장은 "트럼프는 중국의 인권 등 이념이나 가치관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중국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낮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자국 내 개혁과 경제에 초점을 두고 있고, 중국도 향후 (트럼프 임기) 4년간 경제 회복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돼 양국 모두 전쟁을 휘말리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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