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외국인 투자자들의 복귀와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으로 증시는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고, 달러 환율은 1500원선에서 차츰 멀어지는 중입니다. 채권 발행 국가의 대외 신인도 지표로 쓰이는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지난 13일 정점을 찍고 하락 중입니다. 작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 계엄령과 곧이어 전개된 탄핵 정국의 파장이 서서히 진정되는 모습인데요.
하지만 계엄과 탄핵 정국의 영향은 국내 자본시장을 넘어 금융, 외환 시장과 경제 전반으로 퍼져 나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에도 개별 기업의 사업 환경과 소비심리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공시학개론에선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증권신고서·투자설명서를 통해 그 영향의 일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저는 올해 1월 한 달 간 기업들이 금융 당국에 제출한 각종 증권신고서를 살펴 보았고, 그 결과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의 영향이 다양한 분야와 업종에 걸쳐 이들 기업의 잠재적 수익성 악화를 유발할 수 있는 '정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4일 LG화학은 채무증권 발행을 담은 투자설명서를 공시하며 작년 12월 계엄 사태를 언급합니다. 환율 변동성 관련 위험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12월 비상계엄 사태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환율의 상승 압력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환율 하락(원화가치의 상승)은 해외에서 당사 제품의 가격상승을 초래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을 약화시켜 매출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죠.
LG화학 외에도 채권 발행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 다른 기업들이 비슷한 정치 리스크를 언급합니다. 두산은 지난 22일 공시한 채권 투자설명서에 "12월 들어 비상계엄 및 탄핵소추안 표결 등으로 불거진 국내 정치리스크" 등이 급격한 환율 변동을 초래했고 이는 "당사 매출 및 수익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죠. 현대제철도 같은날 공시에 마찬가지로 정치리스크 관련 환율 변동에 "당사의 손익은 더욱 민감해 질 수 있다"며 투자자 유의를 당부했고요.
정치리스크 관련 환율변동은 내수 업종 기업 재무나 실적에도 악영향을 주는데요. 태영건설은 지난 24일 지분증권 투자설명서를 통해 "당사는 외화로 표시된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변동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예상하지 못한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당사 재무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현대차증권도 지난 13일 공시한 지분증권 투자설명서에 "당사가 영위하는 금융투자업의 경우 향후 거시경제 상황과 이에 따른 증권시장의 거래대금 증감에 따라 그 수익성이 개선 혹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정치 갈등이 장기화돼 실물경제 성장 및 투자자들의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줄 경우 이는 국내 증권시장의 거래대금 감소로 이어져 전체 증권업종 및 당사의 수수료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정치 리스크가 금융·경제 악화로 이어진다는 전망은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도 뒷받침됩니다. 일례로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9일 '2025년 국내외 트렌드-격동의 글로벌 정세 속 혼돈의 국내 여건' 보고서를 통해 이점을 지적합니다. 보고서는 "정치 이벤트가 장기화하면 대내외 위험 관리 실패·대외 신인도 하락 등으로 1%대 성장이 고착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속한 정치 정상화와 더불어 적극적인 경기 대응을 통해 대외 위험 관리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죠.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