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이재명의 실용주의 …대선 승리 열쇠될까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5-02-04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설 연휴가 끝났다. 한국인의 정서상 진정한 의미의 새해가 시작된 느낌이다. 자연스레 뉴스를 접하는 시간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내란죄 혐의로 구속수감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열한 행태와 집권 여당의 구질구질한 여론전에 분노 수치가 오르긴 하지만, 그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헌법재판소의 차분하고 단호한 대처에 커다란 위안을 얻는다. 탄핵은 당연한 수순이고, 내란죄에 대한 형법상 처벌 수위가 양형대로 집행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위한 정의이자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과 기대를 토대로 조용히 조기 대선으로 돌입하는 분위기 전환이 역력하다. 대선 출마를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정치인, 은근슬쩍 대선 출마를 내비치는 정치인과 광역자치단체장, 정권교체를 위하여 야당의 연대를 강조하는 정당 등 움직임은 다양하게 드러난다. 이 와중에 언론은 단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노선 전환에 주목한다. 그의 노선 전환은 대통령 권력을 쥐기 위한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정치적 행보인 동시에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정치인의 고뇌를 한껏 보여준다.

물론 이재명 대표의 노선 전환을 조기 대선 국면에서 드러난 뜬금없는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이미 지난해 당론으로 추진하던 금융투자소득세의 도입을 포기했고 가상자산 과세의 유예를 결정했다. 유럽 국가들처럼 횡재세를 도입하지는 못할망정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근대국가의 재정원칙마저 저버리는 결정이라 실망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집권 여당의 강력한 반대를 방패로 삼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과세 포기와 유예의 명분이다. 이재명 대표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포기하면서 "현재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시장에 기대는 1500만 투자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불가피한 사정을 강조했다. 나아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으로 현재 대한민국 증시의 구조적 위험성과 취약성을 해결할 수 없고, "증시가 정상을 회복하고 기업의 자금 조달, 국민의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입법과 증시 선진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해명은 금융투자소득세의 도입 취지를 왜곡하고 증시 비정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증시 정상화나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만 막연히 부추기는 모양새다. 철학도 보이지 않고 비전도 다가오지 않는 공허한 해명으로 들린다.

이재명 대표의 변신은 윤석열의 구속과 조기 대선 분위기의 조성을 계기로 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설 연휴 직전에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재명 대표는 기본사회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불법 계엄과 탄핵 국면으로 민생 경제 펀더멘털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 기본사회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것이 맞느냐"는 고민을 토로하며 성장 우선 경제정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알려졌다.

같은 맥락에서 이재명 대표는 반도체특별법의 '산업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승인할 개연성이 높다. 물론 민주당의 공개 토론회 형식을 취해 산업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지만, 금융투자소득세나 가상자산 과세를 처리한 전례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미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는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고, 더욱이 최근 중국 오픈소스 AI 딥시크가 던진 엄청난 충격파 속에 이재명 대표가 곧바로 AI 개발을 위한 전폭적인 국가 지원을 약속했다. 일련의 개별적인 발언들은 즉흥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성장주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필자가 보기에 이재명 대표의 본격적인 노선 전환은 그에게 정치적 도박과 같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성장 우선 경제정책은 그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소득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금융·기본주택·기본교육을 포괄하는 기본사회 패러다임은 정치인 이재명의 정치적 트레이드 마크이고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이재명 대표가 기본사회 패러다임을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렵다고 보지만, 중도층과 보수층 일부를 확보하기 위해 일정 부분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실한 판단이 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명 대표의 실용주의적 전환에는 지난 대선 패배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거대 여당의 대선 후보로서 근소한 격차로 패배한 사실 자체가 그에게 치욕적인데, 지난 3년 동안 대통령의 실정과 내란 사태에 따른 국력의 낭비, 국가적 위기 상황의 초래를 고려하면 자신의 석패에 대한 부채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경제적 위기 상황에 내몰리는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하여 이재명 대표는 가장 호소력 있는 경제 분야 공약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은 재산 증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후보에게 가장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명박 후보에게 대승을 안겨준 뉴타운공약을 여전히 기억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서 일반적인 환경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승리할 수 없음을 체득하였을 것이다. 이는 세 번의 민주당 집권 역사를 되돌아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국가적 외환위기 상황에서 정치적 숙적 김종필과 연합하지 않았어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까? 결코 아니라고 본다. 노무현의 승리는 어쩌면 기적이라고 말해야 적절하고,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라는 돌발 변수가 없었다면 무난하게 질 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범국민적인 촛불항쟁이라는 이례적인 환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세 번 모두 극적인 상황에서 겨우겨우 얻어낸 신승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우익 보수세력 이외의 정치세력이 집권을 하기가 어렵다는 역사적 방증이다.

이번에도 유사한 상황이 펼쳐졌다. 윤석열의 파직과 처벌 이후 조기 대선은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에게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현재의 정치적 구도를 고려할 때 이재명 대표가 대선 후보로 추대될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과 거부감은 결코 간과할 수준이 아니다. 이미 0.73%의 차이에서 드러났기에 일부 논자들은 이재명 대 이재명 구도를 설정한다. 그것은 변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방정식과도 같다. 이재명은 그 지점을 적확히 꿰뚫고 있다. 문제는 정체성과 대중성의 조화에 달려 있다. 어쩌면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실현되는 정치의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이재명 앞에 놓인 숙제는 기본사회와 성장주의를 어떻게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에 대한 비호감과 거부감을 최대한 완화하는가이다.

이재명의 정체성과 변신을 보면서, 최근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시청한 덴마크 정치드라마 <비르기트>가 여러 면에서 오버랩되었다. 비르기트는 기후정의를 표방하는 ‘신민주당’의 대표이다. 그는 연정에 참여해 외교부장관직을 수행한다. 그런데 그린랜드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면서 덴마크 정부와 그린랜드 자치정부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다. 비르기트는 덴마크의 막대한 국익 앞에서 신민주당의 기후정의를 저버린다. 비르기트의 정치적 배신은 엄청난 비난을 유발하고 실망한 당원들은 신민주당을 떠난다. 더욱이 유전 개발을 둘러싼 국내적 갈등과 함께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발전하면서 비르기트의 정치적 입지는 극도로 좁아진다. 결국 당대표직에서 물러나 제2의 정치인생을 찾아 떠나는 비르기트를 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정을 담당하는 정치가는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국익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숙명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와닿았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매달리면 “자기들 가치관만 옳다고 주장하는 일부 좌파”로 매도되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정치적 신념인 기본사회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경제성장과 상당 부분 배치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분배를 통한 불평등의 완화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분배를 통한 중산층의 형성 없이 민주주의의 만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 심화 과정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자는 제안에 견주면 이재명 대표의 기본사회는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교체하는 참신한 실험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운 법. 이재명 대표는 권력을 잡아야 자신의 신념을 구현하고 공동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결정할 권한’을 누린다는 현실적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정치적 정체성과 자산을 과감히 포기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