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관련주였던 비케이탑스는 작년 5월 13일 코스피에서 상장 폐지됐습니다. 과거 감사인의 검토 결과인 감사의견이 2년 연속 '의견거절'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2000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하고 2010년 11월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후 2018년 6월 10만원대를 호가했던 이 종목 주가는 이후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약 4년 뒤에는 2022년 5월 900원대로 떨어졌고 이 상태로 거래정지 종목이 됐습니다.
당시 한국거래소가 이 회사의 2021 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에 따라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투자유의안내를 공시하면서 퇴출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한국거래소는 2022년 12월에 불성실공시에 따른 벌점 누적으로 또다른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사유가 발생했다고 알리기도 했습니다. 2022년 6월, 10월, 12월 연거푸 비케이탑스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거든요.
하지만 실제 절차가 진행되고 상장폐지가 이뤄지기까지는 대략 2년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규정상 실질심사가 진행되는 절차와 방식에 따라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에 주어지는 '이의신청'과 '개선기간 부여' 등 과정을 거쳤으니까요.
상장폐지 절차는 비케이탑스가 법원 판단을 구하는 과정에 따라서도 지연됐습니다. 거래소는 2023년 11월 29일 유가증권시장 상장공시위원회를 개최해 그 상장폐지 사유를 심의하고 상장폐지를 결정했다고 했는데요. 비케이탑스는 2023년 12월 1일 서울남부지법에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2024년 4월 24일 신청이 기각될 때까지 상장폐지를 늦췄습니다.
비케이탑스 상장폐지 절차와 관련해 투자자들은 개선기간 부여와 이행여부 심의, 법원 판단을 구하는 과정 등으로 거래정지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상장 기업이 정상화하기 위한 기회도 물론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했을 수 있지만, 거래정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투자금이 묶인 비케이탑스 투자자들은 답답했을 것입니다.
현행 제도로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서 거래정지 상태인 종목은 이 기간에 투자자에게 거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비케이탑스의 사례처럼, 거래소가 심사절차 진행 경과만 시장안내 형식으로 공시합니다. 이의신청 접수, 개선계획서 제출, 위원회 심의 등 어떤 단계가 진행 중이라는 점 외에는 투자자들에게 알려주는 점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는데요. 올해 하반기부터는 상장폐지 관련 절차가 진행되는 기업이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는 개선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규정이 개정됩니다. 구체적인 인수합병(M&A) 등 대외 공개가 부적절한 경영상상 비밀 사항을 제외하고는 공시를 통해 투자자들이 기업의 개선계획을 알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올해 1월 금융당국과 거래소 등 유관기관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상장폐지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그간 상장폐지 제도가 기업에 회생기회를 부여하며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두고 운영돼 왔는데, 저성과 기업이 적절하게 퇴출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는 반성과 함께 마련됐습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상장폐지 기업 관련 공시 확대는 1분기 중 거래소의 코스피, 코스닥 공시규정 세칙 개정을 전제로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이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이 개선계획을 제출한다면 그 내용은 공시된다고 보면 됩니다.
국내 증시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2019년부터 2024년까지 평균 99개 기업이 진입하는 동안 그 4분의 1인 25개 기업만이 퇴출됐습니다. 해외 주요국 증시 대비 상장회사 수 증가율이 높은 편이고, 그러면서도 주가상승률은 낮아 '상장기업수 대비 시가총액'도 저조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금융당국은 상장폐지 요건 가운데 시가총액과 매출액 등 재무적 요건, 감사의견 미달 등 비재무적 요건을 강화해 상장폐지 대상 또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의 범주를 확대하기로 했는데요. 동시에 상장폐지의 심의단계와 개선기간을 간소화·축소하고 형식적 사유와 실질심사 사유 중복발생 시 둘 중 하나를 먼저 진행했던 심사도 아예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코스피 기준으로 1심만 판단하는 형식적 사유에 따른 상폐절차 중 개선기간은 최장 2년에서 1년으로 줄고, 실질심사에 따른 상폐절차 중 개선기간은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줄어듭니다. 코스닥 기준으로 3심까지 진행하던 실질심사는 심의단계가 2심으로 줄고 개선기간도 2년에서 1.5년으로 줄죠.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우리나라 증시에 상장 기업 수가 (시총 규모나 주요국 증시 상장사 대비) 많은 편이고, 상장사 가운데 사업 실적이 부족해 회사 채무 이자를 상환하지도 못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면서 "거래 정지된 채 (상장 상태로) 계속 가고 있는 기업은 투자자에게 이도 저도 아닌데 돈이 묶이게 하는 경우로, (빠른 상장 폐지를 통해) 정리 매매나 개선기간·절차를 축소시킨 것은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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