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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뷰] 파시즘의 초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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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기자
입력 2025-02-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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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파시즘'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체포, 구속을 반대하는 진영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양상을 보고 20세기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피어올랐던 파시즘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을 공격하는 초유의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정말 파시즘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로버트 O. 팩스턴이 쓴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이 다시 회자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팩스턴은 책에서 파시즘의 '정서적 기초'를 언급한다. '어떤 전통적인 해결책도 소용 없는 불가항력적 위화감', '개인의 어떤 권리보다 집단에 대한 의무 우선시',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외부의 적에게 법률적‧도덕적으로 한계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한다는 정서', '개인주의‧자유주의‧계급 갈등‧외부의 영향으로 공동체가 몰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윤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4월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과 저녁 식사를 하며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전통적인 해결책도 소용 없는 불가항력적 위화감'이다.

'개인주의‧자유주의‧계급 갈등‧외부의 영향으로 공동체가 몰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비상계엄 선포문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등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들의 군사 시설 촬영 등을 언급하며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고 중국을 겨냥한 것도 마찬가지다.

'내‧외부의 적에게 법률적‧도덕적으로 한계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한다는 정서'는 이미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드러난 바 있다. 팩스턴은 파시즘을 '부정'의 사고와 행동으로 다른 것들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또 파시즘의 뿌리는 대중 정치에 있다고 봤다. 민주주의가 극단적인,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파시즘으로 가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히틀러가 정당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나치당을 밀어준 독일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부상하던 사회주의 세력을 두려워하던 기존 보수주의 기득권층이 대중 동원력을 가진 나치당과 손을 잡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물론 이 책을 바탕으로 작금의 한국 사회를 파시즘이라고 규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파시즘이 보였던 양상과 지금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다짜고짜 파시즘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다만 계엄과 대통령 인식, 탄핵을 둘러싼 지지자들의 정서와 행동 등을 보면 이제 한국 사회는 그동안 잠재돼 있던 파시즘의 씨앗이 발아하려는 순간에 있다고 나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현재 파시즘에 대한 우려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것이다. '파시스트'라며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도 파시즘의 한 모습이다.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정치적 신념이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념적 양극화가 심각했지만 이 정도였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렵게 쌓아 올린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파시즘의 길로 빠질 수 있다. 지금은 파시즘 초입이다.
 
조현정 정치사회부 차장
조현정 정치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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