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② '건축사'와 '예타'에 옹색해지는 문화예술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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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박물관학, 독립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입력 2025-02-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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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진wikipedia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진=wikipedia]
 
신발에 발을 맞추어라
대부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은 우수한 건축물 및 공간환경 설계의 선정을 위하여 설계공모를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건축기본법에 따라 공공건축물은 설계공모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한다. 공모를 위해서 공모방식을 결정하고 설계지침서를 작성하며,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으로 설계의 첫 단계인 기획설계 단계를 대신한다. 이후 설계공모공고, 참가등록, 현장설명 및 질의응답, 공모안 접수, 심사, 결과 발표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때 공모에 응한 건축가는 대개 건립 대상부지 분석 토지이용계획, 배치계획, 평면계획, 입단면계획, 조감도, 비용추정 등의 내용을 제출한다.

건축가는 해당 시설의 설계를 넘어 기관의 세부적인 모든 것, 운영이나 조직, 경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계하는 전지전능한 수준으로 건축가가 그려준 신발에 발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박물관에 몇 명이 근무할지 어떤 직렬의 인원이 얼마나 어디에서 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무실 면적을 정하는 것이다. 이는 새로 짓는 집에 식구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방의 숫자를 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문제는 기획설계단계가 생략된 채 공모에 따라 건축가 또는 건축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축의 첫 단추를 건물을 사용할 사람 즉 건축주는 배제된 채 건축가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를 선정하는 심사위원도 오직 건축관련자 그중에서도 건축사로 건축설계 5년 이상인 사람, 건축과 조교수 이상 5년 이상인 근무한 사람 또는 발주기관이 인정한 사람 중에서 선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직 건축가들만 심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점은 문제다.

따라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음악당이나 콘서트홀, 공연장의 특수한 환경이나 조건에 대한 검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그렇지만 음악당이나 콘서트홀, 연극공연장 등 공연시설에서 음향이나 조명 그리고 무대설계와 관객석의 배치 등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설계 당시 이런 세밀한 부분을 건축가가 전적으로 심사한다는 것은 무리다. 지난해 발표된 송현동 국립문화시설 국제설계공모 당선작도 전시시설로서 전시실의 규모와 관객과 작품 동선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건축물 대부분 특히 문화예술기관이나 공항, 병원 등 전문시설에 관한 설계자 선정을 대부분의 공공건축관련 설계공모를 주관하는 (사)한국건축가협회가 회원 배려 차원에서 관련 전문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에 대한 시정은 필수적이다. 사실 최근 거의 모든 문화예술전문시설에 관한 설계 공모에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배제되고 건축가만으로 구성된 심사를 통해 선정된 해당 시설의 기능과 관리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고 때에 따라서는 개관하기 전에 보수공사를 하거나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수공사를 아주 대대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종시에 건립예정인 도시건축박물관 투시도 사진행복청
세종시에 건립예정인 도시건축박물관 투시도 [사진=행복청]
 
알고도 안 고치는 것은 죄
한국의 문화예술전문시설이 미비하거나 부실한 이유는 또 있다. 정부는 500억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는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 및 관광, 환경 보호, 농림해양수산 산업, 중소기업 분야의 사업은 시행 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해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기술성 등을 판단하여 재정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한다는 ‘신발’ 즉 규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시설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음악당이나 공연장은 일반적인 공공건물과 달리 특수한 시설과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일반적인 건물의 건축비보다 1.2~1.5배가 더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반건축물의 건축비를 적용해 문화예술시설 사업비를 적용하다 보니, 건축비가 올라가면서 규모는 점점 작아지고, 한글 박물관처럼 교육시설이나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건축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부족한 시설은 전문가들의 양질의 문화예술공급을 위한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아마추어 예술가의 취미공간으로 쓰이면서 결과적으로 재정을 오히려 낭비하는 시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평당건축비가 1000만원을 넘는다는 지금, 1999년 마련된 예비타당성조사의 기준인 500억원을 15년이 지난 오늘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또한 문화예술기관이나 기타 건물의 특성과 용도에 따라 예타의 기준을 달리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예타 기준액이 변동없이 간다면 수년 후의 문화예술기관은 기능은 없는 성냥갑만 시설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한글박물관의 화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우선 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시 박물관학자들이나 학예연구원 등을 배제하고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지 못해 관람객 증가와 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 기능을 무시했기 때문에 10년 만에 60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들여 증축이 필요했다는 것은 최소한 10년도 내다보지 않고 박물관을 계획했다는 말이다. 또한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하려고 300억원대의 비용을 산정해 계획을 세웠지만, 심사 과정에서 멋진 계획안이 선정되어 실제로 이를 구현하려면 예산을 초과해 실시설계 또는 건축 과정에서 예산에 맞추다 보니 당선작과 실제 건축물이 차이가 벌어진 것도 이유일 것이다.
 
거제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사진예술회관 누리집
거제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사진=예술회관 누리집]

게다가 통상 유물의 보존을 위해 6개월마다 재편해야 하는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을 2022년 개관 8년 만에 개편해야할 정도로 ‘방치’했다는 점도 우리나라 박물관 정책의 문제점을 말해준다. 유치원생이 한글박물관에 갔다가 중학생이 되어 다시 갔을 때 상설전시실이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은 유독 한글 박물관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지방의 공립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경우 10여년동안 같은 작품을, 고장난 조명기구와 진열장과 함께 그 자체가 박물이 되어 방문객을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개관이후 기본적인 운영경비, 전문인력 확보방안 등을 아울러 조사해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시설을 관리감독 및 운영을 하는 문화체육관광광부 문화예술정책실 지역문화정책관은 ‘문화기반과’를 두어 모든 국공립박물관 와 미술관을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시각예술디자인과’, ‘한글박물관’은 ‘국어정책과’, ‘국립디자인미술관’ 건립은 ‘문화시설기획과’가 아닌 ‘시각예술디자인과’가 각각 따로 떼어서 관장하는 것도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에서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여타의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에서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를 탓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다.

이렇게 한글박물관 화재는 우리나라 통상의 문화예술시설의 전문가의 참여 없이, 시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심사와 설계자 선정 그리고 경직된 예비타당성 조사로 인해 건축물 완공 후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특히 공공이 사용하는 문화예술시설의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증개축은 물론 화제등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이제라도 반면교사로 삼아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쳐나가자. 알고도 안 고치면 이는 범죄다.

 
인천 뮤지엄파크 공모당선작 ‘경관의 기억’ 조감도 사진인천시
인천 뮤지엄파크 공모당선작 ‘경관의 기억’ 조감도 [사진=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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