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경제공동체 유럽연합(EU)과 군사공동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원래 EU는 ‘미들파워’인 독일·프랑스 등이 연합해 중국 등에 맞서는 전략이고, NATO는 강대국 미국 보호 하에 소련·러시아 등에 대응하는 전략이었다. 3년 전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유럽 땅에서 큰 전쟁이 발발했고, 대서양동맹인 미국 트럼프가 푸틴 편에 서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이 동맹을 버리고 적의 편에 선 것은 나치를 패퇴시킨 전후 처음이다. 중국 시진핑의 팽창주의가 유럽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시대 전환으로 유럽에서 ‘우경화’ 바람이 거세다. 군사안보·경제위기에다가 난민들 테러로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국판 트럼프인 존슨이 먼저 시작했는데 ‘브렉시트’를 말한다. 유럽공동체보다 자국 이익을 추구하면서 유럽 대륙국가들의 극단 진영은 EU·NATO 탈퇴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독일에서 국민정당으로 불리던 기민당과 사민당 등 중도연합정치보다 좌우 극단 정치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2월 23일 총선에서 극우 신생정당 AfD가 집권당인 사민당을 앞지르고 기민당에 이어 2위에 올랐고, 극좌 좌파당 열풍도 불었다. 지역별·세대별 간극도 나타났다. 철의 장막에 오랫동안 밀폐되었던 구동독 지역에서 극우 AfD(48%)와 극좌 좌파당이 초강세를 보였다. 청년의 경우 남성은 극우 AfD에, 여성은 극좌 좌파당에 많은 표를 던졌다. 이미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에서 극우정당이 정권을 잡았다.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유럽 정치지형에 더욱 우경화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회장과 J.D 밴스 부통령은 독일 총선에서 AfD가 “독일위기를 극복할 정당“이라고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독일 유럽에서 우경화의 자양분과 원인은 무엇인가?
고급지 NZZ, FAZ, 뉴욕타임스는 우경화가 심화되는 유럽 주요국가 현장 목소리를 르포로 보도했다. 독일 뮌헨에 살고 있는 타라 와일드 유치원 교사는 “이민자들이 테러를 하고, 많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으로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에너지값이 폭등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살기가 팍팍해진 것이다. 프랑스 극우 르펜 당으로 알려진 국민연합은 노골적으로 “민족주의가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민족포퓰리즘으로 2당이 되었다. 중동에서 온 이민자들 범죄와 인플레이션이 영향을 주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지난 9월 총선에서 자유당(FPÖ)이 29% 얻어 승리했다. 1950년대 전 나치세력이 설립한 자유당은 처음으로 1당으로 올라 연정협상을 하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반이민에다가 팬데믹 시대 봉쇄를 ‘독재’라고, 반대파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은 이웃나라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극우 동지로서 전투적인 헤르벨크 킥클이 FPÖ를 이끌고 있다. 빈에 살고 있는 38살 베르너 바시체크 공무원은 “남성과 여성 2개 성만 있지, 33개의 성별은 문제 있다”면서 극단 페미니즘과 이슬람 등 다른 문화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네덜란드에서 2023년 11월 극우 헤이르트 빌더스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승리했다. EU·유로존 탈퇴에다가 모스크를 금지하는 강경 정책을 펴고 있다. 시민들은 “이민자에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면서 빈익빈 부익부 신자유주의 정책과 주택부족 및 인플레이션에 불만이 높다. 최근 영국에서는 머스크에 대한 분노가 치솟고 있다.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나이젤 페라시 당수가 새로 창당한 극우 개혁당에 머스크가 큰돈을 기부하면서 노동당과 보수당을 넘어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머스크를 ‘21세기 자본의 괴벨스’라고 부르면서 테슬라 거부 운동을 벌인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 김진경 작가는 “유럽에서 극우가 부상하게 된 바탕에는 지난 수십년간 좌파정치 실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특히 “경제, 난민, 교육, 환경, 페미니즘 정책뿐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고 외교국방에서 힘을 잃은 게 트럼프에 휘둘리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독일과 유럽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3가지 측면, 즉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안보, 관세폭탄으로 인한 경제전쟁, 미·중패권전쟁 차원에서 분석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밀월 상황에서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백악관 충돌과 차기 독일총리인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FAZ와 특별인터뷰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먼저 미국으로부터 유럽의 안보국방 자립이다.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젤렌스키 정상회담에서 거친 고성이 오가면서 결렬되었다. 이는 닉슨 대통령이 종전협상 때 키신저를 보내 베트남에 ‘미친놈 전략’, 즉 핵위협을 한 사례와 유사하다. EU집행부와 프랑스, 영국, 독일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겠다’고 말하지만 과연 얼마만큼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트럼프는 EU를 ‘기생충’으로 간주한다. 독일 외교부장관은 “미국 국방에 의존한 기생충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동맹타령하지 않고 자주국방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신조어 푸틀러(푸틴+히틀러)가 유행한다. 만약 푸틴에 유리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되면 다시 유럽에서 푸틴의 침공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독일 메르츠 총리 후보는 FAZ와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유럽재건개발은행처럼 1000억 유로의 유럽군축은행 설립이 제안되었다”면서 군비재원 마련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또 트럼프와 푸틴이 엄포 놓은 ‘3차 세계대전’ 대비를 위해 유럽 핵우산 전략으로 “60년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독일이 핵공격을 받으면 프랑스 핵으로 방어한다는 각서가 있어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유럽군 창설’을 제안했다. 프·독 관계가 한·일 관계에 큰 시사점을 준다. 독일은 군비증강을 위해 벤츠회사가 장갑차를, BMW가 드론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트럼프가 곧 유럽산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예고한 가운데 무역전쟁이 발발했다. FAZ 등 고급지들은 아예 ‘경제전쟁’으로 부른다. 기존 중심산업인 자동차·철강·화학에서 무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마크롱은 ‘즉각 보복관세’를 언급하면서 ‘약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U위원회도 미국에 보복관세뿐 아니라 구글 등 빅테크 규제법을 마련했다. 유럽 고급지들은 독일 EU가 경제 덩치에 맞게 ‘군사자력 안보’와 더불어 ‘근육질’(힘의 정치)에 의존한 트럼프, 푸틴, 시진핑에 맞서야 한다고 비판한다. 극악무도해지는 힘의 국제정치시대 모호성이나 양다리 걸치기는 실패하게 된다.
또한 미중패권전쟁이 주요광물패권전쟁으로 번져가고 있다. 시진핑은 대국굴기를 위해 광물을 무기화했다. 미국이 발표한 AI반도체, 배터리, 레이저 첨단무기 등에 필요한 희토류 등 주요광물 50개 중 29개가 중국이 최고생산국이다. 트럼프가 천연자원·광물자원 보고인 우크라이나, 그린란드, 캐나다를 탐내는 이유다. 주요광물이 없으면 AI·반도체생산뿐만 아니라 첨단군사시스템 구축에서 권위주의 중국에 뒤질 수 있고, 자유민주주의 전체에 위기가 올 수 있다. 트럼프가 푸틴과 ‘거래’하고 EU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배경이다. 시대전환기 유럽 시민들은 무능한 정치인들에게 ‘머리 처박고 벌서라’고 분노한다. 그럼 우리 정치인들은?
김택환 작가
국가비전전략가와 유럽전문가로 활동. <넥스트 코리아> 등 넥스트 시리즈 8권을 포함 20여권 이상 집필한 작가다. 독일 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를 지냈다. 국회·지자체·상공회의소·삼성전자 등 350회 이상 특강한 유명강사로 미래전환정책연구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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