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제 유가의 급락이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유가가 급락한 가운데 석유·가스 수출에 재정을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가 전쟁 자금이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FT는 현재 수준의 유가가 지속될 경우 러시아의 2025년 예산이 당초 예상보다 최대 2.5% 감소할 수 있다고 러시아 금융회사 T인베스트먼트의 소피아 도네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경우, 러시아는 약 1조 루블(약 17조원)의 예산 손실이 발생하고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5%포인트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러시아는 2025년 예산안을 계획할 때 유가를 배럴당 69.70달러(약 9만9400원)를 기준으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10일 기준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은 러시아 정부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친 배럴당 약 50달러에 거래됐다. 이로 인해 연방 예산에 재정적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연방 예산에서 석유·가스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넘는다. 석유, 에너지, 광물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 구조상 유가 하락이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는 비군사 지출 삭감, 국채 발행 확대, 국가복지기금 인출 등 고강도 긴축 조치에 나서야 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부펀드(NWF)의 상당 부분을 경제 안정화를 위해 사용해왔으며, 현재 해당 기금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연구소의 벤자민 힐겐스톡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재정 적자를 메울 경우 올 연말에는 NWF의 자금이 고갈될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가 비전쟁 지출 삭감이라는 고통스러운 수단 외에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여부는 다른 문제"라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사회 지출과 같은 비군사적 분야에서 예산 삭감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유가 하락은 전쟁 지출로 둔화되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공 부채는 GDP 대비 30% 미만으로, 국제 기준으로는 낮은 편이다. 이에 따라 외국 자본 시장에서 추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하지만 서방의 제재와 투자 심리 위축 속에서 실제 유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FT는 짚었다.
최근 유가 급락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강행 여파에 미국 및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지난주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60달러를 밑도는 등 국제 유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측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종전을 둘러싼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지난 11일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담당 특사와 푸틴 대통령 간 회담이 4시간30분 가까이 진행됐으나 뚜렷한 합의가 도출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을 앞두고 "획기적인 돌파구는 기대하지 말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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