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에겐 온화했고, 성직자에게는 단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항상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고, 미약한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그러나 교회에는 엄격했다. 사제들의 위선을 꾸짖었고, 교황청의 관행에 철퇴를 가했다. 온화한 미소와 냉철한 카리스마가 공존했던 그의 ‘두 얼굴’은 종교를 넘어 무신론자조차 경외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음에 새겨야 할 큰 어른이다. 양극단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그의 리더십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자기 자신에는 엄격하되,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 솔선수범과 언행일치의 태도는 기득권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닮아야 할 모습이다.
'섬김'으로 벽 허물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섬기는 리더십’으로 사랑과 평화를 증명했다. 그의 앞에서는 그 어떤 견고한 벽도 무너졌다. 이념도, 종교도, 빈부도, 지역과 성별마저도 의미를 잃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오직 사랑, 평화, 그리고 희망이었다.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와대 연설을 통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하게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교황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그는 평소 대담집 등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때 돈만 줘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들의 눈을 보고,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듯, 기꺼이 아래로 향했다. 2014년 8월 첫 아시아 순방지로 한국을 택한 그는 한국에 머물렀던 100시간 동안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졌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었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꼭 쥐고 눈을 맞추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위로했다. 이태원 참사, 산불 피해 등 국내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잊지 않고 위로를 전했다.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기쁨에 넘쳐 검약을 실천했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50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찼다. 순금 십자가 대신 낡은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착용하고, 서류 가방을 직접 들고 다녔다. 호화로운 관저를 놔두고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숙소에서 생활했다.
그는 갈등으로 점철된 국제무대에서 유일한 중재자였다. 인류 지도자로서 고뇌에 잠긴 그의 모습에, 누구든 멈춰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2013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밀항하던 난민 360명이 배가 전복돼 숨진 비극이 일어나자, 그는 현장을 찾아가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2014년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올리며 평화를 기원했고, 2015년에는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이끌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2021년 이라크를 방문해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줄곧 평화를 촉구했다.

안으로는 엄격했던 리더
약자에겐 한없이 자애로웠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와 수도자 등 교회 내부에는 냉정할 만큼 단호했다. 그에게 ‘제 식구 감싸기’란 없었다. 그는 "봉헌 생활에서 청빈은 방벽이자 어머니"라고 말하며,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절제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역대 교황 그 누구보다 집안 단속을 철저히 했다.특히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2014년에는 바티칸 사도 궁전에서 추기경과 주교들을 모아놓고 쿠리아(교황청 행정조직)의 병폐를 조목조목 짚으며 ‘영적인 치매’ 등 강경한 발언으로 출세지향주의와 향락주의, 배금주의에 젖은 성직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바티칸은행에서 부정이 발견되자 추기경 5명 가운데 4명을 갈아치웠고, 개혁을 위해 프랑스 금융인을 은행의 수장으로 앉혔다. 교회 내 아동 성추행 근절에 나섰고, 바티칸 내 권력을 쥐고 있던 이탈리아인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나라 성직자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새 교황 취임 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던 관례도 폐지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아이들에게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수도자들에는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정체성은 정의와 선과 평화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며 ‘수도자들의 부자화’를 연일 질타했다.
국내 주요 종교 지도자 단체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는 전날 애도문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평생을 복음에 헌신하며 특별히 가난하거나 병든 이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었다”며 “교황님의 리더십은 전통과 현대의 균형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교회의 문을 넓히고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하는 데 앞장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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