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이후 매장을 찾는 미국인 손님이 부쩍 늘었어요.”
지난 25일 방문한 중국 베이징 시내 궈마오 쇼핑몰 1층에 위치한 DJI(大疆, 다장) 플래그십 매장 점원의 말이다.
DJI는 중국계 글로벌 1위 상업용 드론 업체로, 현재 미국 상업용 드론 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스마트폰·노트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 오르면서 관세 폭탄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최근 하루 평균 7~8개 제품을 외국인이 사 간다”며 “그중 미국인이 다수”라고 말했다. 외국인은 제품 구매 시 현장에서 즉시 세금 환급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며 휴대폰을 꺼내 최근 매장에서 세금 환급을 받은 외국인 여권·영수증 내역도 기자에게 보여줬다.
트럼프 관세 피해 값싼 물건 찾아 떠도는 '관세 난민'
실제 최근 중국 현지 언론에서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해 중국에 쇼핑 관광 오는 미국인”, “중국인이 미국산 제품을 직구하는 게 아닌, 미국인들의 중국 역직구가 급증하고 있다” 등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 특성상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조치에 대한 미국인의 반발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여론전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미국인의 중국 쇼핑 관광을 뒷받침하는 통계 수치도 있다.
중국 모바일결제 시스템 알리페이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내 외국인 관광객의 알리페이 소비액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5배 늘었다. 이 중에서도 미국인 관광객의 알리페이 이용액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트럼프발 관세를 피해 중국에 쇼핑하러 여행 온 미국인들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들을 가리키는 ‘관세 난민’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트럼프의 틱톡 금지령으로 새로운 대안 플랫폼을 찾아 나섰던 ‘틱톡 난민’처럼 미국인들이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해 더 저렴한 물건을 찾아 떠돌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이라 불리는 샤오훙수의 미국인 인플루언서 루루도 ‘관세 난민’ 중 한 명이다. 루루는 최근 올린 영상에서 “화웨이 제품을 사러 중국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빈 캐리어를 끌고 중국에 갑니다. 여행이 아니라 쇼핑하려고요. 내 돈 주고 중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가서 옷 가방 전자제품 장난감을 잔뜩 사와도 남는 장사에요”라고 말한다. 이 영상은 현재 2800명이 넘게 ‘좋아요’를 눌렀을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관세 난민' 물결에···앱스토어 2위 등극한 '작은 노랑앱'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중국산 제품을 직구하는 것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미·중 관세전쟁 격화 속 중국계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중국 인플루언서들이 글로벌 명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장에서 직접 찍은 영상을 올린 게 ‘관세 난민’ 물결에 불을 지폈다.
영상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명품 브랜드 제품이 알고 보니 중국 공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생산돼 '라벨'만 새로 붙여 수십 배 높은 가격에 팔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의 타오바오나 둔황닷컴과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명품 브랜드와 동일한 제품을 중국 공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에 '관세 난민'들이 몰려오면서 '둔황닷컴'이라는 '무명'의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순식간에 앱스토어 최고 인기 어플로 떠올랐을 정도다. 지난 13일 하루 미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둔황닷컴의 최대 다운로드 건수는 전날보다 무려 18배 급증했다. 둔황닷컴은 총 97개국에서 자사 거래 증가율이 2배를 넘었으며, 특히 미국에서 거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둔황닷컴은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부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앱스토어 무료 앱 순위 300위 밖이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쇼핑앱 목록 중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다음날인 15일엔 전체 앱 목록에서 오픈AI의 AI챗봇 '챗GPT'에 이어 2위까지 꿰찼을 정도다. 미국인들은 노란색 로고에서 착안해 둔황닷컴에 '작은 노랑앱(Little yellow app)'이라는 애칭도 달아줬다.
특히 '관세 난민'들이 가장 구매를 선호하는 아이템은 가전제품이다. 둔황닷컴에 따르면 이달 13일부터 17일까지 가전제품 거래액이 평소보다 962%나 늘어나며 가장 큰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인들은 가전제품 이외에도 반려동물 용품, 의류, 신발, 가방, 전자기기 등을 주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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